“사고발생 시 차에 탄 사람을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10명의 보행자를 구할 것인가”
윤리적 이슈 부상…사회적 합의 필요
뒷좌석에 사람을 태운 자율주행차가 빠른 속도로 운전하는데 갑자기 10명의 보행자가 나타났다. 차를 멈추기엔 늦은 상태. 운전대를 꺾으면 탑승자가 벽에 부딪쳐 죽을 확률이 높고, 그대로 직진하자니 10명의 목숨이 위태롭다. 자동차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다수를 살리기 위해 탑승자를 희생하도록 프로그램이 된다면 자율주행차를 살 사람이 없을 것이고, 탑승자를 보호하자니 다수가 죽는다.
이 같은 딜레마 상황에 빠졌을 때 자율주행차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기 위해 입법ㆍ행정ㆍ사법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사고 직전 선택의 순간뿐 아니라 사고 후에 누가 책임을 지고, 그 책임범위는 어디까지일지도 논의의 대상이다. 주행은 기계가 하지만 결국 이를 둘러싼 윤리적 판단과 기준은 사람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야 하는 ‘인간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는 탑승자가 브레이크, 운전대, 가속페달 등을 제어하지 않아도 도로 상황을 파악해 자동으로 주행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2020년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 및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딜레마의 연속, 쟁점은
7일 대한서울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자율주행차 윤리 세미나’에서 논의된 윤리 쟁점을 단순화하면 크게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 ▦공공의 편익을 최대화할 것인가 ▦자율주행차의 책임을 최소화할 것인가 등 3가지다.
하지만 현실은 딜레마의 연속이므로 여러 가치들 중 하나만을 단순 택일할 수는 없다는 게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김규옥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선택의 대상이 노인과 어린이일 경우, 1인과 다수일 경우, 차량과 동물일 경우 등 무수히 많은 상황이 존재한다”며 “정교한 선택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학전문가는 물론 윤리와 철학, 법학 등 인문학 분야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논의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윤리선택의 방향성조차 합의가 안됐지만 인공지능과 접목해 여러 사례를 학습시키고 관련 정보를 많이 주입시킨다면 최적의 선택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을 것이란 주장(김민구 아주대 교수, 남현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도 나왔다.
책임은 누가, 어디까지
지금까지는 자동차 사고가 나면 운전자에만 사고 발생에 따른 책임이 있었지만 자율주행으로 운전자의 개입 정도가 달라지면 차량 제조사에 대한 책임 범위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험 운행하던 구글의 자율주행차가 옆 차선의 버스와 충돌한 사고가 났을 당시 구글은 “우리 차가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우리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며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제조사뿐 아니라 도로 등 주변환경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중기 홍익대 법과대학장은 “도로 조명, 통신, 포장상태 등 도로환경도 중요해지기 때문에 도로관리자와 교통신호 관리자 역시 책임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운전자 책임을 중시하는 현재의 교통사고특례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보험법, 자동차관리법 등 수많은 법률을 정비하고, 필요하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애기다. 이런 법률도 자율주행차 상용화 단계마다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명묘희 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는 지적도 나왔다.
또 황창근 홍익대 교수는 “완전히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려면 앞, 옆, 뒤차에 탄 운전자 정보와 위치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실시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과연 해결할 수 있을지도 중요 문제”라고 말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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