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4월 9일 동토(凍土)의 땅 사라예보에서 감격의 승전보가 날아 들었다.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이에리사와 정현숙, 박미라 선수가 일본을 꺾고 대망의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구기종목 사상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혜성처럼 나타난 약관 19세의 이에리사 선수는 8강전에서 최강 실력의 중국 선수들을 잇달아 물리치며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 됐다.
4단식 1복식으로 진행된 단체전에서 이에리사와 정현숙은 단식을 맡았고 박미라는 복식에 투입됐다. 예선 5경기를 전승으로 통과한 한국은 결승리그에서 중국과 헝가리를 차례로 격파했고, 마침내 9일 열린 일본과의 경기를 3대1 승리로 장식하며 영광의 코르비용컵을 품에 안았다. 사라예보의 승전보는 가난에 힘들던 국민들에게 더 없는 감격을 안겨줬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던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만세를 불렀고 현장을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낭보를 전하며 목이 메고 말았다.
선수단이 귀국한 4월 23일, 김포공항에는 30만의 환영인파가 몰려나왔고 선수들은 오픈카를 타고 서울 시내와 전국을 누볐다(사진). 탁구열기가 전국을 뒤덮어 동네 탁구장마다 제2의 이에리사를 꿈꾸는 선수들로 넘쳐났음은 물론이다. 올해 62세가 된 이에리사는 국회의원으로 변신했고 정현숙은 탁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유고슬라비아는 연방이 해체되면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6개국으로 나뉘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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