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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함께 떠나는 우도 여행

입력
2016.04.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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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그림이 된 풍경을 찾아 섬 한 바퀴

마지막 배가 떠난 뒤 진짜 우도를 만날 수 있어

목숨 걸고 바다로 들어가는 ‘해녀길’ 가슴 시려와

어떤 책은 단지 읽는 것만으로도 멀리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준다. 권윤덕의 그림책 ‘시리동동 거미동동’도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그간 내가 알고 있는 우도는 천진항 부근의 번잡함과 짭쪼롬한 갯내음 속에 바닷가를 잠시 거닐다가 성산포항으로 돌아오는 반나절의 짧은 여행지였다. ‘시리동동 거미동동’ 책을 볼 때마다 우도를 다시 거닐고 싶었다. 그림책의 배경으로 우도를 만난다면 여행의 기쁨은 배가 되리라.

완연한 봄기운을 받으며 우도 행 배를 탔다. 우도를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성산포항에서 아담한 배를 타고 우도 청진항으로 내리는 길이 하나이고, 종달리 하도항에서 조금 큰 배를 타고 반대편 하우목동 항으로 내리는 길이 있다. 우리 일행은 제주시의 동쪽 선흘에서 출발했기에 성산포행을 택했다. 성산포에서 우도까지는 배 타고 10분이면 도착한다.

그러고 보니 우도 주민, 박신옥씨의 당부가 떠올랐다. 신옥씨는 순천 출신으로 전직 중학교 선생님을 지냈다. 5년 전, 소설을 쓰고 싶어 학교를 그만 두고 우도에 정착했으며 스스로 노닐다 부족장이라 이름 짓고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우도를 떠나기 전 안부 겸 근황을 물으니 장사가 너무 잘 되어 여태 소설을 못 쓰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도는 관광객과 함께 들어왔다가 그날 나가는 건 재미없어요.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나서야 진짜 우도를 만날 수 있거든요. 언제든지 오시되 하룻밤 여유를 갖고 오세요.”

신옥씨의 말이 그럼직하게 들렸다. 요즘 제주에는 어디서건 관광객이 넘쳐났다. 우도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우도 행에는 권윤덕 작가와 제주 토박이 장천출판사 대표 권영옥씨가 함께 했다. 책이 나왔을 때 했던 오래 전 약속을 이제야 지키는 셈이다. 우리는 그림책 속 장면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청진항에서 왼편 해안 길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바다 건너 삼각형 모양의 지미봉이 내내 우리를 따라왔다. 다행히 작가가 집필기간 동안 묵었던 집을 찾았고 주인 할머니를 만나 뵐 수 있었다.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어떤 아가씨(?)가 우리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갔다고 자주 자랑하기도 했다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할머니 집 올레길로부터 하고수동 백사장으로 가는 해안길이 ‘시리동동 거미동동’의 주된 배경이다. 물먹은 까만 바위들, 눈이 시릴 만큼 아찔한 푸른 하늘과 수평선, 마을의 액운을 막는 방사탑도 책 속 느낌 그대로였다. 바다로 난 ‘해녀길’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시려왔다. 해안도로에서 바다로 비스듬히 경사지게 만든 바다 길을 해녀들은 저승길이라고 부른다. 가끔 바다 속에서 작업하던 해녀가 숨결을 놓았다는 사고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몸으로 산다는 건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엄정한 일이다. 가슴이 먹먹하다.

아쉽게도 ‘시리동동 거미동동’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해안가 초가집은 헐렸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 집들은 거의 펜션이나 식당으로 성업 중이고 마을 깊숙한 곳까지 공사 중이다. 곧 대규모 리조트도 지어진다니 정말 걱정스럽다. 자연스런 해안선이 살아있는 우도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우도에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해수욕장이 세 곳이나 있는데, 하고수동 백사장과 서빈 백사장. 검멀레 해안이다. 각각의 백사장은 규모는 작으나 모래의 특징이나 백사장이 품은 배경이 달라서 사람마다 좋아하는 취향도 다르다. 특히 여름에 우도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해수욕장을 즐기기 위해서인데 호젓한 섬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 것이다.

우도에 가면 우도봉은 꼭 올라보라 권하고 싶다. 한라산이 제주 그 자체인 것처럼 우도봉이 우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등대에서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한라산과 성산포의 일출봉의 해안가, 청보리 밭과 유채꽃이 배경으로 펼쳐진 마을풍경들이 오밀조밀한 게 자연 그대로의 우도를 느끼게 한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해달섬 식당을 찾았다. 우럭조림과 해물물회는 신선하고 맛깔스러우면서도 푸짐했다. 우도의 딱새우장 맛도 특별하지만 서비스로 나온 회 몇 점에 술이 참으로 달았다.

밤늦은 시간, 바닷가 팬션에 방 하나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숙소에서 얻은 정보 하나, 우도에도 비양도가 있단다. 흙덩이가 날아가다 섬이 된 곳, 섬 속의 섬 우도에 섬 하나가 더 있다니 신기했다.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에 나선 비양도. 지금은 다리가 놓여 해안가에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섬이면서 섬이 아닌 곳, 우도 속의 비양도는 걷는 것만으로도 기(氣)를 받는다하여 장수길이라고 불린다. 게다가 왜구의 침입을 본도에 알리는 봉수대와 해녀들의 안녕을 빌었던 해신당이 있고 해녀의 집 앞바다에는 원담(밀물에 들어온 고기가 썰물이 되면 갇히는 곳)이 새로 만들어진 것과 옛날 것의 원형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원담에는 해녀들이 잡아온 해산물 망사리가 가득하다. 해녀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해녀의 집은 뿔소라 구이와 전복죽, 모듬회(문어숙회, 전복, 소라)는 저렴하면서도 신선한 해산물의 진미를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도를 떠나기 전 천진항 입구에 있는 노닐다 카페에 들렀다. 아침 식사로 방금 구운 땅콩머핀과 커피, 허브차를 내왔다. 직접 농사지은 유기농 재료로 만든 따뜻함과 정성에 귀하게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신옥씨는 매주 금요일이면 현지 주민과 이주민, 작가들과 함께 청진항 부근에 ‘우도 장날’을 진행하고 있단다. 장에선 손수 지은 농산물과 수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장이 점차 자리를 잡는다면 우도를 방문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듯하다.

4월의 유채꽃과 청보리의 싱그러움 속에 책 속 주인공이 되어 자유롭게 거닐어 본 우도의 여정은 말 그대로 봄날의 아름다운 향연이다.

허순영 제주착한여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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