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적립금을 적극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열고 건강보험을 포함한 7대 사회보험의 여유자산을 적극 운용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이 4년 연속 흑자를 내면서 누적 적립금이 17조원에 달하지만 수익률은 7대 사회보험 중 가장 낮은 2.2%에 불과해 자산운용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재부 관계자는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면 건강보험도 적자로 갈 수밖에 없다”며 “건강보험 자산운용 체계의 개선을 통해 재정건전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을 제외한 6대 사회보험은 모두 연기금 투자풀에 위탁하거나 민간에 맡기고 있어 사실상 건강보험 적립금을 타깃으로 한 셈이다. 건보 적립금을 주식ㆍ부동산 등에 적극 투자해 수익률을 높임으로써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수익을 창출해 자산규모를 키워야 하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연기금과는 성격이 판이한 사회보험이다. 더욱이 건보 적립금의 전용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건보 적립금을 ‘보험급여 비용이 부족할 경우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법은 건보 재정의 20%를 정부가 지원토록 했지만 최근 9년 간 정부 지원율은 16%에 그쳤다.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이번 방침에 대해 건보 재정에 대한 국고 지원을 줄이려는 꼼수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보 흑자에 대해 정부는 5대 암 무료검진사업 등이 효과를 내면서 입원비 및 암 급여비 증가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건보 정책이 일정 부분 긍정적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건보의 흑자 지속은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실제 지난해 건보 재정의 수입 증가율은 7.4%인 반면, 지출 증가율은 5.7%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건보 보장률(총 진료비 중 건보 부담 비율)은 2009년 65%에서 2011년 63%, 2013년 62%로 매년 뒷걸음치고 있다. OECD 평균은 75%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1년 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 비수급 빈곤층이 36.8%나 된다고 보고했다. 입원비 증가율이 떨어진 것도 본인 부담이 큰 입원을 기피한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도 가계 지출 중 보건의료비 비중은 늘고 있다. 의료 보장성이 낮은 데다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늘어난 탓이다. 남아도는 건보 적립금을 의료서비스 강화나 보험료 인하에 써야 할 이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