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드라마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KBS2 수목극 ‘태양의 후예’(태후)의 최근 방송을 보면 ‘과연 그런가’라는 물음표가 절로 떠오른다. 총에 맞아도 쉬 죽지 않는 유시진(송중기) 대위를 보고 ‘불사신’이냐는 비아냥이 나오고, ‘막장 드라마’ 못지 않다는 힐난도 나온다. 홍삼과 중탕기, 자동차 등 화면을 가득 채운 간접광고(PPL) 때문에 ‘드라마가 아닌 60분짜리 광고’라는 이죽거림까지 들려온다.
‘태후’는 방송 초반만 해도 국내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데렐라나 캔디 같은 여인을 내세우지 않고 전장에서 피어나는 남녀의 사랑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자신의 스타일과 고집을 버린 스타작가의 협업 시도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도전적인 드라마가 시청률 30%를 넘겼으니 박수 받을 만도 했다. 하지만 방송 10회를 넘기면서 극적 긴장감은 사라졌다. 군인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섬세한 묘사도 찾을 수 없다. 사전제작 드라마의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었던 ‘태후’가 ‘용두사미 드라마’로 전락하고 있다. 14일 종방하는 ‘태후’를 이리저리 뜯어봤다.
라제기기자(라)=“방송 초기와 달리 ‘태후’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다.”
조아름기자(조)=“재미는 있었지만 몇 가지 허술한 부분이 거슬렸다. 군대가 이제 비밀스러운 곳이 아닌데도 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아쉬웠다. 남자 시청자들이 사실성이 떨어진다며 이의를 제기할 만도 했다.”
양승준기자(양)=“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를 짜깁기하는 듯했다. 가령 배경이 우르크에서 서울로 바뀐 뒤 북한군이 갑자기 등장한 장면은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총을 맞고 병원에 입원한 유시진 대위가 심정지가 된 상태에서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걸어 다니기도 했다. 전체 맥락상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가 펼쳐져 아쉬웠다.”
강은영기자(강)=“사전제작 드라마가 지상파 방송에서 시청률 30%를 넘긴 점, 새로운 형식의 로맨틱코미디를 선보인 것, 중국시장을 겨냥한 맞춤형 드라마로 성공한 점 등은 칭찬할 만하다.”
양=“사전제작의 장점을 찾을 수 없다. 사전제작이라면 탁월한 영상미를 보여주던가 만듦새가 좋다거나 해야 하는데, ‘태후’는 그렇지 못했다. 영상이 아름답다 생각했던 적은 딱 한번이다. 등장인물들이 우르크 밤 하늘의 별빛을 볼 때였다. 드라마의 구성도 촘촘하지 않아 완성도면에서 사전제작의 장점이 발현된 것 같지 않다.”
라=“‘태후’는 흔히 알고 있는 사전제작과는 다른 듯하다. 사전제작은 완성도가 뛰어나야 한다는 고정관념과는 별 관련이 없는 듯하다. 영화투자배급사인 NEW(뉴)가 제작하면서 상업영화처럼 얼마나 더 잘 팔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고 본다.”
양=“시장 상황만 고려한 사전제작이지 그 외에는 사전제작이 지닌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강=“사전제작임에도 간접광고(PPL)을 많이 넣었다는 것도 신기하다. 방송 초반에는 보이지 않던 PPL이 후반에 대량 등장하면서 질타를 받은 건 옥에 티다.”
양=“후반부의 PPL은 도가 지나쳤다. tvN 드라마 ‘미생’에서도 출연자들이 홍삼을 먹었다. 그런데 윤명주(김지원)와 서대영(진구)은 상용화도 안 된 자동주행 자동차를 광고하고, 송상현(이승준)과 하자애(서정연)는 이야기 전개와 무관하게 자동차 매장까지 가서 특정 브랜드의 차를 고른다.”
강=“자연스럽게 초반부터 PPL 안배를 잘 했어야 했다. 홍삼이나 중탕기, 자동차 등은 PPL로 악명 높은 지상파 일일극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스타작가도 이제 PPL은 피해갈 수 없다 보다. 영향력 있는 김은숙 작가도 PPL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라=“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군국주의가 논란이 되기도 했고, 베트남에선 한 기자에 의해 ‘민간인을 학살했던 한국군을 옹호하는 드라마’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양=“극우적인 요소가 강한 면이 있다. 대통령이 중령에게 ‘우리 국민을 살려줘서 감사하다’며 90도로 인사하는데 낯뜨겁다고 느꼈다.”
라=“레이건 시대에 보수주의 바람이 미국을 휩쓸고 있을 때 등장한 영화가 ‘탑 건’(1986)이다. 미남 배우 톰 크루즈를 공군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전투기 조종사로 내세워 여성 팬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탑 건’은 시장을 면밀하게 분석해 주인공 선정부터 배경 설정까지 세심히 신경을 쓴 대표적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태후’는 너무 상업적이라는 점에서 ‘탑 건’을 떠올리게 한다.”
강=“그래도 결말을 둘러싸고 많이들 궁금해 한다. ‘유시진 일병의 꿈이다’ ‘누군가가 죽는 새드엔딩이다’ 등 여러 풍문이 돈다. 결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막판에 시청률이 더 오를 거 같다. 김 작가의 영향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양=“로맨스는 김 작가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김 작가의 유치한 듯 달달한 대사는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이다.”
라=“강모연이 유시진에게 하는 ‘내가 이제 널 감당할게’라는 대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낭만적으로 변주해서 풀어낸 거다. 남자 시청자들이 ‘‘태후’에 아내를 빼앗겼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태후’의 최고 수혜자는 송중기 아닌가.”
강=“‘태후’를 논할 때 송중기만 거론된다. 송혜교는 연기적인 측면에서 시청자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 듯하다.”
양=“송중기 같은 꽃미남 배우에게 군대는 무덤이라 다름없다. 제대 뒤 예전 역할에 집착하지 않고 남성적인 역할을 택하며 오히려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조=“유시진은 깊은 내면 연기를 필요로 하는 배역이 아니라 연기력을 언급할 수는 없다.송중기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등에서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역을 잘 해냈는데 그런 모습이 유시진과도 딱 맞아 떨어졌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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