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구태와 부조리가 판친 총선
낡은 정치 극복해 새 출발 하려면
만 19세인 선거권 연령 하향부터
더없이 지루했던, 혹은 나쁘게만 드라마틱했던 20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선거란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그도 없다면 차악이라도 택해 최악을 막는 정치행위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저 명제를 좇아 고심 어린 한 표를 던졌고, 그 귀한 한 표 한 표가 모여 오만한 여당의 참패라는 예상 밖의 결과를 빚어냈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다. 여소야대가 되고 견고한 지역주의가 일부 무너지고 3당 체제가 들어선 것으로 낡은 정치는 심판을 받은 걸까. 이제 새로운 정치의 판이 열리는 걸까. 쉬이 답하지 못할 물음들이 꼬리를 문다.
이번 총선은 결과와는 별개로 그 과정이 참 나쁜 선거였다. 선거판의 온갖 구태와 악습이 재현됐고, 최고권력자의 독선은 공당(公黨)을 사당(私黨)으로 몰락시키며 선거 개입조차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절망스러웠던 건 청년의 실종이다.
선거는 나와 우리,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정치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할 시공간이다. 그러려면 인물에서나 정책에서나 청년이 당당히 한 축을 이뤄야 마땅하다. 더구나 최악의 취업난과 임금 차별 등에 신음하며 ‘헬조선’이니 ‘흙수저’같은 자조만 쏟아내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작은 숨구멍 하나가 절실했다.
그런데도 거대 정당들은 패권 다툼과 대권 놀음에 빠져 그 절규를 외면했고 ‘○○○키드’란 꼬리표를 단 극소수 청년들의 등판을 젊은 피 수혈로 치장했다. 청년을 위한 정책 역시 급조한 공약집 한 귀퉁이에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었을 뿐이다. 일각에서 청년이 중심이 된 군소정당이 고군분투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허약한 조직, 선거법상의 각종 제약, 언론의 경마식 보도 관행 등의 탓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조차 힘겨웠다.
이대로 가면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와 맞물려 정치 영역에서의 청년의 실종은 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선거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정치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면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이 힘을 모으고 목소리를 낼 장을 열어주는 데서 그 첫걸음을 떼야 한다.
당장 선거권 연령을 만 19세 이상으로, 각종 선거에 후보로 나설 수 있는 피선거권(대통령 제외)은 만 25세 이상으로 제한한 법부터 고쳐야 한다. 더구나 만 19세 미만은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 참여조차 할 수 없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처럼 어려서부터 정치를 접하면서 성숙한 시민이자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봉쇄당한 것이다. 최근 KBS 보도에 따르면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30세 미만 의원 비율은 각각 10.1%, 9.0%, OECD 26개국 평균도 2.8%다. 반면 우리 국회의 20대 의원은 0명.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국내에서도 선거연령 하한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주장이 잇따랐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주된 반대 논리로 정치적 판단능력의 미성숙을 들지만 근거가 약하다. 2011년 기준으로 선거연령 하한이 만 18세 이하인 나라는 전세계 92.7%인 215개국에 달한다. 일본도 올해부터 선거연령 하한을 만 18세로 낮춰 OECD 회원국 중 만 19세 이상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우리 병역법상 입대 연령도, 8급 이하 일반직 공무원의 임용기준도 만 18세다. 나라 지키라고 총 쥐어주고 공무를 맡길 수 있는 나이인데도 유독 선거만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선거는 민의의 대표자를 뽑는 장이자 새로운 시민을 유권자로 받아들여 교육시키는 장이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의 참신한 생각이 정치를 살찌우고 사회를 발전시킨다. 19세에 독일 연방의회 의원에 당선돼 ‘세계 최연소 의원’으로 주목받은 안나 뤼어만은 최근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좋은 정치인이냐는 흰머리 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역량, 성실성에 달려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과 이를 위해 싸우려는 진정한 욕망을 갖는 것이다. 나머지는 정치 활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더 많은 청년들에게 정치참여를 허하라!
이희정 디지털부문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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