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심장 대구 수성갑 3수 끝 당선
야당 후보로 31년 만에 'TK혁명'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여권 텃밭의 심장부인 대구 수성갑에서 세 번의 도전 끝에 살아 돌아왔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지기 시작한 13대 총선 이후 대구ㆍ경북(TK)에서 정통 야권 후보의 당선은 31년 만이다.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의 벽을 허문 선거혁명의 주역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상징성만으로도 김 당선자는 야권의 새로운 대권주자로 단숨에 급부상했다.
경기 군포에서 3선을 지낸 김 당선자는 2012년 “군포에서 4선을 하는 건 월급쟁이 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과제인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며 고향 대구로 홀연히 내려갔다. 그러나 대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12년 총선에선 40.4%를 득표하며 파란을 일으켰지만, 기호 1번의 벽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로 두 번째 출사표를 던졌지만 역시나 40.3%를 얻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졌지만 이겼다”“아름다운 도전”“제2의 바보 노무현”이라는 평가가 이어졌고, 그의 정치적 위상은 점점 더 커졌다.
이번 승리는 4년 간 한눈 팔지 않고 공을 들인 김 당선자의 진정성이 통했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선거 내내 인적이 드문 주택가 골목이나 아파트 단지 담벼락에 대고 혼자 독백하는 일명 ‘벽치기’ 유세로 바닥 민심을 파고들었다. 기호 2번을 특별히 내세우지 않고 철저하게 ‘김부겸’이라는 인물론으로 승부하는 전략이었다. 물론 ‘유승민 공천 파동’ 등 새누리당에 대한 대구 유권자의 반감도 무시할 수 없지만, 김부겸이란 인물이 아니었다면 대구의 민심을 끌어오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평소 야권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던 김 당선자는 이번 승리로 야권의 차기 주자 반열에 올랐다. 다만 당내 조직 기반이 공고하지 않은 만큼 전당대회에 나서기보다는 곧바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무엇보다 난공불락이었던 대구 민심을 녹일 만큼 표의 확장성이 크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꼽히고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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