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등장인물 정봉(안재홍)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동생아, 나는 통닭을 찾는 게 아니라 ‘두 마리’라는 성함을 가진 분이 있는 지 찾는 거다”라며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린다. 아버지가 통닭 두 마리를 사 들고 올 것이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듣고 한 엉뚱한 행동과 말이다.
정봉이처럼 현실 속 안재홍(31)도 엉뚱하고 자유분방한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는 ‘B급 코미디’를 표방한 저예산영화 ‘위대한 소원’(21일 개봉)의 갑덕 역할에 그대로 녹아있다. 그는 한창 공부해야 할 고3임에도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삶 선고를 받은 친구 고환(류덕환)의 소원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장수생’이면서도 별난 취미에 매달리거나(‘응팔’), 복학한 뒤 취업보다 족구에 매달리는 이전 역할(영화 ‘족구왕’)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14일 오전 1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재홍은 “실제로는 친구들도 많지 않고 사고 칠까 봐 무서워 학창시절도 조용히 보낸 편”이라고 말했다.
무엇 하나에 꽂히면 무서울 정도로 몰입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정봉이처럼 ‘위대한 소원’의 갑덕도 친구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매진한다. 같은 반 여학생들에게 고환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가 뺨이 남아나질 않고, 심지어 친누나에게 같은 요구를 했다가 아버지에게 골프채로 매질을 당한다. 그래도 웃는 낯으로 고환의 병실을 찾아 “친구야, 우리가 꼭 네 소원을 들어줄게”라고 말한다.
‘응팔’과 ‘위대한 소원’에서 보여준 안재홍의 코믹연기는 그를 고수라 칭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깔끔하다. 무채색에 가까운 말투와 목소리로 일관하면서도 표정만큼은 살아 있어서다. 그만의 전매특허인 ‘진지한 코믹’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박장대소가 절로 나온다.
B급 코미디 영화의 특성을 감안하면 안재홍이 재치 있는 애드리브를 발휘했을 듯한데 오히려 삼갔다고 한다.
“애드리브는 거의 하지 않아요. 류덕환 김동영과 호흡이 너무도 잘 맞았기 때문에 적절치 않은 애드리브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은 제가 순발력이 떨어져요(웃음).”
안재홍은 그의 이름을 알린 영화 ‘족구왕’과 ‘응팔’에서도 애드리브는 자제했다.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아 대본에 충실 하는 스타일이라고. ‘위대한 소원’의 경우 남대중 감독의 지시에 따라 “명확한 연기”를 하려고 애썼다.
남 감독은 안재홍에게 “갑덕이라는 인물이 영화 처음부터 하나의 캐릭터로 분명히 드러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안재홍은 “캐릭터를 빨리 파악해 갑덕이를 초반부터 드러내는 게 목표”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인물의 성격이 파악되는 영화가 아닌 처음부터 ‘덤앤더머’ 같은 남준(김동영)과 갑덕의 찰떡궁합을 선보여야 했다.
안재홍은 작품 속에서 까불거리는 코믹한 이미지와는 달리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의 청년이다. 인터뷰 내내 질문을 받으면 한 번 생각하고 천천히 말을 풀어냈다. 신중한 성격이 엿보였다.
“‘응팔’ 이후에 인터뷰도 많이 했지만 아직도 말을 잘하는 게 어려워요. 사진 찍을 때는 더하고요. 표정이 경직되죠. 사실은 웃음이 헤픈 편이죠. 낯가림이 심해서 그런가 봐요.”
진지한 안재홍이 코믹 연기를 잘 하는 이유는 아마도 비디오를 빌려보던 오랜 취미 덕분이 아닐까. 그는 어릴 적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 “비디오 대여점에 살았다”고 했다.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하도 많이 가서 사장님과 친하게 지냈다”며 다양한 장르의 코믹 영화를 즐겨봤다고 했다.
‘응팔’과 tvN 여행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에 출연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안재홍에게 달라진 게 있을까. 그는 “달라진 게 있다면 마트에 가면 알아봐주시고 반가워해 주는 분들이 많은 것”이라며 “그게 아직도 신기할 뿐이지 사는 방식이 달라졌다거나 하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크랭크인하는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 배우 이선균과 함께 주연을 맡는다. 데뷔 7년 가량 만에 상업영화의 주연급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나 안재홍은 변요한 류준열 등과 함께 단편영화계의 유명 인사였던 배우다.
“궁금증을 갖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고를 때 어떤 배우가 나오고 어떤 감독이 연출했는지를 염두에 두고 고르거든요.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면 찾아서 보게 되고요. 그런 신뢰감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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