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원효(元曉) 대사가 대승불교 인식론을 논한 문서인 ‘판비량론(判比量論)’ 일부가 일본 도쿄에서 발견됐다.
서지학자인 정재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20일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 오치아이 히로시(落合博志) 교수가 소장한 9행의 판비량론 단간(斷簡ㆍ책에서 떨어져 나간 부분)을 지난달 도쿄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원효가 671년 저술한 판비량론은 당나라 현장법사가 고안한 논증 방식인 비량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가 저술한 150여권 중 유일하게 집필 시기와 장소를 알 수 있다. 원래 한 장에 35행씩 담겨 25장으로 구성됐다고 알려졌으나 조각난 채 흩어져 완본이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교토 오타니(大谷)대학이 3장 105행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에 찾은 9행은 크기와 종이 재질, 서체 등이 그것과 동일하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이번 조각은 가로 14㎝, 세로 27㎝ 크기이며, 유려한 초서체다. 1~5행은 제6절에서, 6~9행은 다른 절에서 잘라 접합한 형태다. 정 교수는 “일본에서는 과거 글씨가 예쁜 책을 잘라서 표구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완본이 전해지지 않아 이번 발견한 부분만으로 내용을 짐작하기에는 여전히 무리”라고 말했다.
이번 판비량론 조각에서도 각필(角筆ㆍ뾰족한 상아나 나무 등으로 쓴 글씨)이 세 군데 확인돼 일본의 가타가나가 신라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일본 나라 도다이지(東大寺)의 화엄경 구결과 유사하며 시기적으로 앞섰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각필은 신라 사람들이 글을 읽기 쉽도록 한문의 뜻이나 조사, 어미 등에 붙여 놓은 구결(口訣)이다.
소장자인 오치아이 교수는 10여 년 전 교토의 한 서점에서 ‘비량’이라는 글자를 보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료를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교수는 오치아이 교수가 2005년에 낸 서예 도록에서 필사본 사진을 보고 수소문해 그가 가지고 있는 9행의 자료가 판비량론의 일부임을 이번에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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