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日 사이에 낀 新넛크래커
10년 뒤 마이너스 성장 올 수도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가 급선무
대기업 중심 수출전략 벗어나
중기, 중견 기업 육성에 초점을
‘빨리’ 문화에서 ‘미리’ 문화로
뉴노멀(New normal)과 빈부격차 확대, 신흥국의 위기 등으로 요약되는 글로벌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 경제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2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일보 주최로 열린 ‘2016한국포럼’의 첫번째 토론 세션 ‘격변하는 글로벌 환경, 한국의 시장전략은’에서 경제ㆍ산업분야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수출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경욱 전 OECD 대사(사회자)=한국 경제는 위기 상황인가.
박홍재 현대자동차 부사장=기업은 항상 위기와 성공을 반복해 겪는다. 또한 위기는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위기를 ‘도전’으로 여기는 이유다.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 분야는 크게 세 가지 도전에 직면했다. 우선 우리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었다. 엔저(低) 상황이 장기화하며 한국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약해졌고, 중국 업체의 기술경쟁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꽉 끼인 ‘신(新) 넛크래커’ 상황이다. 둘째, 산업구조 대변혁이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 지금까지 130년 간의 변화보다 향후 10년 동안의 변화가 더 클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커넥티드카(정보통신 기술과 자동차를 연결시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게 한 차량)와 같은 기술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제조업이 추격형 성장 모델에서 선도형 성장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성장통이 상당히 크다.
윤원석 KOTRA 정보통상지원본부장=한국 경제는 산업 구조조정과 시장진출 전략 변화를 통한 반등이냐, 아니면 추락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 경제는 주로 중간재나 자본재 수출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글로벌 벨류체인(가치사슬)에 강하게 편입돼 있었으나, 2008년 이후 중국의 가공무역 축소로 이런 가치사슬의 큰 축이 바뀌어 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경제학적인 개념에서 크라이시스(위기)는 위환 위기나 국가 파산 등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이 현재 위기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 상황이 그대로 지속되면 10년 뒤엔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며, 기업의 탈 한국 현상도 가속화할 것은 분명하다.
허 전 대사=성장 동력과 수출시장 경쟁력 약화를 방치하면 가까운 장래에 우리 경제가 추락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런 만성적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박 부사장=성장동력 회복이 급선무다. 그래야 기업들이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전환할 여력이 생긴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생산성과 품질 경쟁력, 원가 경쟁력을 빨리 회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이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산업구조 변화에 대한 나름의 시나리오를 그린 뒤 이를 현실화 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가령 자율주행차가 도입되면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적어질 수도 있지만, 운전을 못하는 사람도 차를 구입함에 따라 수요가 커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선도형 성장 모델로 성공적으로 전환하려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인재들이 공대로 많이 진학해 시장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많이 배출돼야 한다. 기업의 조직문화 역시 빨리 따라가자는 ‘빨리’ 문화 중심에서, 변화에 미리 준비하자는 ‘미리’ 문화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원장=성장동력의 회복 기미가 보여야 투자를 할 수 있다면 15년은 앉아서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기업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새로운 투자에 나서야 한다. 수출에 있어서도 단순 수출 물량보다는 부가가치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향후 15년 간 저성장 기조 속에서 승리할 수 있다.
박 부사장=경제학자들은 너무 비관적인 것 같다. 기업가들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본다. 신규 투자처를 마련하기 위해 신흥국가를 다닐 때는 그 나라에 꿈을 가진 기업가가 있는지, 교육 잘 받은 인재들이 많은지, 유능한 관료가 있는지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인데, 기성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세계화가 된 한국 젊은이들은 4차 혁명에 잘 대응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이 세대를 어떻게 잘 키워서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려 있다.
윤 본부장= 내수 중심이냐, 수출 중심이냐 여러 논란이 있지만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형 국가에서는 세계 시장 진출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 글로벌 시장진출 전략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 우선 제조업 중심으로 지나치게 편중된 수출 전략을 바꿔야 한다. 대기업 중심의 현재 수출 전략 아래서는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 역시 잘 작동하지 않는다. 중소ㆍ중견기업은 양적 성장보다는 글로벌 벨류체인에 안정적으로 편입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창업 친화적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전기차 그룹 테슬라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처럼 과감한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도 급선무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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