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이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로 인터넷상에 특정 후보 비방 글을 남긴 국가정보원 직원 유 모씨의 국정원법상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특정 여성과 그 딸에게 성적 폭언을 한 모욕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의 판단이 소극적 해석에 그쳤다는 지적과 함께 검찰의 부실 기소가 논란이 되고 있다.
유씨는 2011년 재ㆍ보궐 선거와 2012년 대선 때 인터넷에 수천 건의 정치성 댓글을 게시한 혐의로 국정원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국정원법 9조 2항에는 ‘직위를 이용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 지지 또는 반대 의견 유포’(2호)‘특정 정당이나 특정인 선거운동’(4호)을 금지하고 있는데 검찰은 유씨의 행위가 개인 자격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4호만 적용했다. 재판부는 수천 건의 댓글 중 선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글이 손학규, 문재인 후보 비방 등 10건에 불과해 선거운동으로 보기 힘들다고 봤다. 특정 후보를 위한 계획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댓글 건수가 적다고 해서 낙선을 도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민감한 선거 국면에서 국가공무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선거운동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판단했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가 무죄 판단의 근거로 든 국정원 보호 목적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유씨가 야당 정치인을 비방한 데 대해 재판부는 “자신이 소속된 국정원을 보호하거나 방어하려는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했는데 이는 유씨가 행위를 정당화한 것처럼 비친다.
법원의 이번 판단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유씨의 존재는 2013년 6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당시 드러났으나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이 아니어서 별건(別件) 처리됐다. 그러나 검찰은 1년 뒤 유씨를 한 차례 소환한 뒤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아 여론의 비판을 받고서야 2년4개월이 지난 지난해 11월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선거사범 공소시효가 6개월 이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이 신속히 공소제기를 했더라면 유씨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검찰의 정권과 권력기관 눈치보기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무성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정원 등 국가 권력기구의 정치와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법의 잣대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게 상식적 법 감정이다. 또한 국정원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라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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