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은 또다른 짐을 안게 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차기 주자들이 궤멸하다시피 타격을 입으면서 정권 재창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과 보수층 지지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외부로 향하고 있다. 외부 명망가 중에서 당의 얼굴을 찾겠다는 것. 그 중 단연 주목 받고 있는 인물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여론 조사를 종합해 보면 반 총장에 대한 지지율은 나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최근 실시한 4월 월간 정례 차기 대선주자 양자대결 지지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반기문 양자대결에서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 지지율이 42.8%로 반 총장(42.3%)보다 불과 0.5% 포인트 앞선다. 초박빙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반 총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와 대결에서는 반 총장(41.0%)이 안 대표(32.3%)를 오차범위 밖인 8.7%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총선 이후 좀 더 적극적으로 반 총장을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추켜 세우며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 기사보기)
특히 반 총장의 임기가 올해 12월까지여서 여권과 보수층의 구애는 앞으로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여러 평가를 통해 리더로서 반기문을 살펴 봤다.
세상을 지배하는 한국인
“두 한국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한 두 한국인은 반 총장과 세계은행 총수에 선임된 한국계 미국인 김용 총재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최근 한 행사에서 농담처럼 반 총장과 김 총재를 가리켜 ‘두 한국인이 세상을 접수했다’고 말했다.
2007년 유엔 사무총장에 오르고 연임에 성공하며 전세계적으로 한국인의 자부심과 위상을 끌어 올리는데 기여한 반 총장은 고교 시절부터 국제 무대를 꿈꿨다.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그는 충주고 2학년때 적십자사에서 주최한 영어 웅변 대회 입상을 계기로 미국을 방문했다. 백악관을 방문한 그는 존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난 것을 계기로 외교관을 꿈 꾸게 됐다.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1970년 제3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반 총장은 오랜 외교관 생활을거쳐 김영삼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 김대중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차관, 노무현정부에서 외교통상부장관 등을 지냈다. 이후 2006년 10월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했다. 전임 사무총장인 아프리카 가나 출신 코피 아난에 이어 아시아 대륙에서도 사무총장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서 유리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출마를 선언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경쟁자보다 지명도도 높았다. 덕분에 반 총장은 이듬해 1월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반기문은 기회주의자?
외교관으로서 승승장구한 반 총장이 좋은 이미지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외교부가 공개한 1985년도 외교 문서 내용 중 반 총장이 당시 미국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한 사실이 들어 있다. 반 총장은 당시 외교부 참사관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연수 중이어서 상부 보고 의무가 없는 유학생 신분이었다. 이 문서가 공개되면서 반 총장이 상부에 잘 보이려고 과잉 충성하는 기회주의적 공무원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런 비판은 과거에도 있었다.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011년 공개한 비밀 외교전문에 따르면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2006년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 정부에 보내는 보고서에서 반 총장에 대해 “미국 정부와 미국의 가치, 미국 국민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이라고 평가해 보고했다. 따라서 그가 당선되도록 미국이 지지해야 한다는 보고서였다.
또 지난 2012년에는 반 총장이 주도해서 우리가 미국에 대해 환경주권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06~2009년 진행된 반환미군기지 협상에서 당시 반기문 외교부 장관 이 환경부측의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미국이 기지의 환경오염 치유 비용을 물도록 해야 한다” 는 주장을 무마하고 미국측 요청을 수용했다는 주장이 비밀 외교전문 분석을 통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 기사보기)
리더십도 논란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국내와는 다르게 반 총장을 바라보는 각국의 평가는 다양하다. 그 중 가장 비판을 많이 하는 부분은 그의 리더십이다. ‘리더십이 별로다’‘UN 직원들의 평이 좋지 않다’ ‘반기문이 쓰는 사근사근한 방식은 세계적 리더의 면으로써 좋지 않다’ 등의 평가가 잇따랐다.
최근 미국 상원의원들이 반 총장을 맹비난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가 유엔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상원 외교위원회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청문회를 열고 유엔을 성토하며 평화유지군의 성범죄가 지속될 경우 미국이 자금 지원을 끊는 방안까지 거론했다. 특히 코커 위원장을 비롯한 의원들은 평화유지군의 성범죄 의혹이 2005년 유엔 보고서에 처음 제기됐는데도 반 총장을 비롯한 유엔 고위 관계자들이 이를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유엔 내부에서도 관료주의적 문화와 리더십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유엔에서 30년간 근무한 한 직원이 신문 칼럼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반 총장 취임 이후 유엔에 만연한 관료주의가 평화유지군 운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유엔에 ‘굳은 개혁 의지를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반 총장의 리더십을 비판했다. (☞ 기사 원문 보기 ☞ 한글 번역본 보기 )
대선 출마?
반 총장이 내년 대선에 출마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도 계속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세계은행(WB) 본부에서 열린 행사에서 그는 대권 도전을 묻는 한국 기자들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이런 애매모호한 태도 때문에 그를 ‘간기문’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대선 출마시 유ㆍ불리를 저울질하며 간만 보고 있다는 불만이다.
게다가 대선에 나선다면 여야 어느 당으로 나설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보수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보지만 김대중ㆍ노무현정부에서도 고위 공무원을 역임 할 만큼 중도적 성향을 갖고 있어 진보진영과도 잘 맞는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최근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에 대한 지지 발언으로 진보진영의 지지는 많이 옅어졌다. 이 때문에 여당내 친박계에서 지난해 말 ‘이원집정부제 개헌론’까지 운을 띄우며 노골적인 영입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외교 전문가이자 관료로 살아온 반 총장이 우리 사회의 복잡 다단한 사회ㆍ경제적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정치 전문가’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는 곧 그런 그의 정치적 자질에 대해 아직도 의문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희경기자 ksta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