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GM)의 전신인 대우자동차는 1990년 9월26일 신차 ‘에스페로’(사진)를 발표하며 독자개발 모델의 꿈을 실현했다. 국제 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로 ‘희망’이란 의미처럼 대우차는 에스페로에 희망을 담았다.
그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신차발표회에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 김대중 평민당 총재 등 거물들이 총출동했다. 당시 최고의 여배우였던 황신혜씨도 에스페로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현대자동차의 쏘나타에 맞서기 위해 대우차가 4년간 총 1,400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에스페로는 처음에 엔진 배기량 2.0ℓ급 중형 승용차였다. 91년에는 1.5ℓ 엔진이 추가됐고, 95년에는 2.0ℓ 엔진 대신 1.8ㆍ1.6ㆍ1.5ℓ 엔진으로 변화했다. 중형 세단에서 준중형급으로 내려간 것은 또 다른 중형 세단 ‘프린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에스페로에 탑재된 1.5ℓ 엔진은 간발의 차이로 국내 첫 독자개발 엔진 자리를 빼앗겼다. 현대차가 불과 한 달 먼저 알파 엔진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매는 91년 3월 시장에 나온 에스페로 1.5가 현대차 알파 엔진이 적용된 ‘스쿠프 알파’ 보다 두 달 빨랐다.
에스페로의 최대 강점은 디자인이었다. 지금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시대를 앞선 디자인은 고객을 사로잡았다. 이탈리아의 디자인 외주업체 베르토네와 함께 개발한 쐐기 스타일의 날렵한 외형과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앤 ‘랩어라운드 디자인’은 둥글둥글한 경쟁 차들을 압도했다. 반면 베르토네가 디자인에 관여한 시트로엥 ‘잔티아’와 비슷하다는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영국왕립예술학교 출신으로 베르토네와 힘을 합해 에스페로 디자인 개발을 이끈 정주현 대우차 디자인실장은 현재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키우고 있다.
날렵한 외형 덕에 에스페로의 공기저항 계수(0부터 1 사이의 숫자로 표시하며, 0에 가까울수록 공기 저항이 작다는 뜻)는 세계 최저 수준인 0.29였다. 이전까지 국산차는 대우차의 ‘르망’이 0.32로 최저였다. 비슷한 시기 국내에서 판매된 BMW 850i의 공기저항 계수가 0.29로 에스페로와 같았다.
에스페로는 파격적인 마케팅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세계 품질평가단’이란 이름으로 100명을 선발해 1년간 무상으로 차를 빌려주자 무려 43만명이 응모했다. 이런 마케팅을 주도한 게 박성학 사장이다. 대우차는 판매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현대차에서 포니 신화를 일군 박 사장을 전격 영입했다.
1990년 10월 생산을 시작한 에스페로는 후속 모델인 누비라에 바통을 넘기고 96년 12월 단종된다. 6년 3개월의 짧은 생이었다. 이 기간 총 54만6,520대가 생산됐고 이중 24만대 정도가 수출됐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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