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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김영옥은 왜 힙합 바지를 입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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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김영옥은 왜 힙합 바지를 입었나

입력
2016.04.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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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힙합의 민족'에 출연 중인 배우 김영옥. JTBC 제공
JTBC '힙합의 민족'에 출연 중인 배우 김영옥. JTBC 제공

계급장 떼고 실력만 본다면 아직 잘 모르겠다. '할미넴'(할머니+래퍼 에미넴)이라는 타이틀로 방영 초반 얼굴 도장은 확실하게 찍은 듯하다. 4회를 맞은 JTBC 할머니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 '힙합의 민족' 얘기다. 평균 시청률 1.3%(닐슨코리아 집계)로 흥행 여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중견 스타들의 새로운 도전 자체는 흥미롭다는 반응이다. 출연자들도 적극적이다. 올해 80세에 접어든 배우 김영옥은 "망신 당하려고 나왔다"고 민망해하면서도 디제잉까지 시도하는 열정을 보였다.

고령 연예인이 2030세대 문화에 뛰어들고 있다. ‘바운스’로 전 연령층을 다 잡은 가수 조용필보다 직접적이고, 청년들에게 해외여행의 매뉴얼을 전수한 ‘꽃할배’들보다 적극적이다.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올해 90세가 된 KBS '전국노래자랑' MC 송해는 지난해 12월 남성잡지 '맥심코리아'의 최고령 모델로 영화 '대부'의 말론 브란도 콘셉트의 화보를 선보였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영진(29)씨는 "맥심코리아의 표지는 주로 젊은 여성 모델이 장식했는데, 이번 화보는 신선했다"며 "조용필의 '바운스'가 히트한 후 고령 연예인의 색다른 시도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연예계 밖에서도 트렌드세터를 자처하는 고령 연예인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평소 패셔니스타로 꼽히는 중년배우 김용건은 최근 SNS를 통해 자신의 패션과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아들인 배우 하정우의 팬까지 유입되면서 김용건은 신흥 SNS 스타로 부상했다. SNS에 가입한지 4개월 정도로 게시물은 아직 15건 밖에 없지만, 팔로워 수는 4만 3,000명에 달한다.

배우 김용건이 SNS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게시물. 예비 며느리를 자처하는 네티즌의 댓글로 화제가 되고 있다. 김용건 인스타그램
배우 김용건이 SNS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게시물. 예비 며느리를 자처하는 네티즌의 댓글로 화제가 되고 있다. 김용건 인스타그램

2030세대들은 고령 연예인의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김용건의 SNS를 즐겨 찾는다는 대학생 박서준(26·가명)씨는 "김용건씨가 SNS를 시작한 이후 세대 차가 훨씬 좁혀진 것 같다. 그의 일상을 보며 노년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직장인 최진희(28)씨는 "열정이 식기 쉬운 나이에 새로움을 추구하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JTBC '힙합의 민족'도 할머니의 랩 실력이 민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도전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찍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도 한국과 비슷한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평균 나이 67세인 최고령 5인조 아이돌 지팝(爺POP·할아버지 팝)이 '고령만세'라는 댄스곡으로 데뷔했다. 지팝은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젊게 살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노래 가사도 '밤샘을 해도 5시 반이면 눈이 떠진다. 그래도 건강해. 고령 만세.'로 노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달 미야기현에서는 88세의 할머니 후지사와 타츠코가 래퍼로 데뷔하기도 했다.

일본 청년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대학생 마츠바라 미사(20)는 지팝에 대해 "할아버지가 댄스곡에 맞춰 춤을 추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좋아 보인다. 노인들도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토 츠카사(21)는 "보통의 아이돌과 같이 지속적인 인기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노인들에겐 활력을 주는 취미가 될 수 있으니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일본 노인이 젊어지는 이유는 노년층의 IT 이용 증가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권희주 건국대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조교수는 "노인이 새로운 소비자로 부상하고, 이들이 청년층의 디지털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라며 "지팝 역시 청년층과 소통할 수 있는 콘셉트, 유통 방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기존 노인의 이미지와 다른 긍정적 메시지가 청년들에게는 새로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간 대중문화에서 다소 멀찌감치 서있던 노인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일본과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이미 트로트 '내 나이가 어때서', '백세인생' 등의 콘텐츠가 흥행에 성공해 노년층을 공동체의 주체로 재고할 계기를 마련했다. 권 교수는 "미국, 유럽도 노인 중심 방송이 흥행한 사례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현상"이라며 "'힙합의 민족'도 '힙합'이란 매개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으로 노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힙합의 민족' 등장 배경을 세대 간 문화 격차의 축소에서 찾았다. "연령대에 따라 문화가 단절되는 현상이 줄었다. '할미넴'의 탄생은 결국 노년층과 청년층의 문화가 따로 구분될 필요가 없다는 대중 인식이 연예 콘텐츠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하 평론가는 "중년층에게도 자극이 될 것이다. 현재 40~50대 층은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는데, 그런 그들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힙합이라는 분야를 방송으로 간접 경험하는 셈이다. 대리만족의 효과는 덤"이라고 덧붙였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안유경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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