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업계 여신 21조 2000억
산업-수출입銀 자기자본비율 급락
외부 입김에 구조조정 차일피일
리스크 관리 부실 대책 없이
또다시 세금 투입땐 논란 커질 듯
‘국책은행에 외풍 막아주며 올해 안에 성공한 구조조정 케이스 만들어야”
정부가 조선ㆍ해운 분야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업종에만 수십조원에 달하는 돈을 빌려준 국책은행의 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국책은행들은 주요 부실 기업의 주채권은행으로서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흘려 보내며 부실 기업을 연명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향후 자본 확충을 둘러싼 공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ㆍ수출입은행이 주요 조선ㆍ해운사에 빌려준 여신 규모는 21조2,000억여원에 달한다. 산업은행은 이중 대우조선해양에만 4조원의 여신이 있고, STX조선해양(1조9,000억원) 현대상선(1조2,000억원) 등에도 1조원 넘는 채권을 가지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무려 9조원을, 성동조산해양과 STX조선에는 각각 2조3,000억원, 1조4,000억원의 대출을 해준 상태다. 그 결과 지난해 산업ㆍ수출입은행의 부채비율은 3년 전보다 100%포인트 넘게 급증하며 각각 811%, 644%에 달했다. 특히 수출입은행은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3월말 기준으로 국책ㆍ민간은행을 통틀어 유일하게 10% 이하인 9.8% 수준으로 떨어졌다.
부실 규모가 커진 1차적인 원인은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에 미적대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을 해온 데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8년 이후 구조조정의 일종인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이 개시된 상장기업 39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시중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둔 기업들의 워크아웃 개시시점은 한계기업(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자를 갚지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되는 기업)으로 식별되는 시점보다 평균 1.2년 앞섰다. 반면 3개 국책은행(산업ㆍ수출입ㆍ기업은행)의 워크아웃 개시시점은 한계기업 식별시점보다 1.3년 늦었다. 시중은행에 비해 구조조정 시점이 2.5년이나 늦은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 전체의 구조를 고려해야 하는 국책은행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결과라고 국책은행들은 항변한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국책은행은 일반 시중은행과 달리 건전성뿐 아니라 여신 심사나 투자 판단 시 지역경제나 산업기반, 고용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치권이나 금융당국 등 외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책은행이 산업적 고려를 명분 삼아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지적한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완종 사건에서 드러나듯 구조조정 대상이 대기업인 경우 정관계를 통해 구명 로비를 하면 국책은행으로서는 견뎌낼 도리가 없다”면서 “최근에는 채권단을 함께 구성하는 시중은행에 대한 국책은행의 발언력 역시 상당히 약해져 국책은행 중심의 구조조정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국책은행은 자기 돈이 아닌 정책 자금으로 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시중은행만큼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장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을 앞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국책은행이 자금줄 역할을 맡아야 하는 상황. 결국에는 정부 재정을 동원한 증자,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증자 등 자본 확충이 불가피할 거라는 관측들이 흘러 나온다. 실제 26일 열리는 산업ㆍ기업구조조정 협의체에서도 이런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어떤 방안이 도출되든 혈세 투입 논란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국책은행들의 체질 악화가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한 상황에서 혈세로 메우게 되면 논란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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