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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사라져 버린 소중한 추억의 장난감 모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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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사라져 버린 소중한 추억의 장난감 모았죠”

입력
2016.04.2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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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겸 장난감 수집가 현태준씨가 서울 서교동 자신의 수집품을 모아 놓은 '뿔랄라수집관'에 장난감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만화가 겸 장난감 수집가 현태준씨가 서울 서교동 자신의 수집품을 모아 놓은 '뿔랄라수집관'에 장난감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만화가 현태준(50)씨는 장난감 수집가로 더 유명하다. 손가락 크기만 한 싸구려 고무 장난감부터 고급 플라스틱 모형까지 우리나라 장난감을 그만큼 아는 사람도 드물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수집품 중 일부를 전시ㆍ판매하는 ‘뽈랄라 수집관’을 운영하고 있는 그가 최근 국내 플라스틱모형의 역사를 정리한 ‘소년 생활 대백과’를 펴냈다. 1970~1990년대 초등학생 문화의 단면을 프라모델(조립식 플라스틱 모형)의 연대기로 풀어낸 책이다. ‘뽈랄라 수집관’에서 만난 현 작가는 “1998년부터 수집을 시작했는데 언젠가 장난감의 역사를 총망라한 책을 내야겠다 생각하면서 조금씩 준비했다”며 “분류와 정리, 촬영, 스캔 등에만 3년이 걸렸다. 쓰다 보니 900쪽 이상 되는 분량이어서 지금 분량인 600쪽 정도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추억에 잠길 법한 내용이 많다. ‘소년중앙’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잡지부터 어린이들의 백화점이라 할 만한 학교 앞 문방구, 외국 제품을 불법 복제한 장난감들까지. 장난감은 탱크와 전함, 전투기, 보병 세트 등 밀리터리 모델과 달려라 번개호, 우주소년 아톰, 깡통로보트, 황금박쥐, 철인28호, 마징가Z, 로보트태권V 등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주를 이룬다. “모형ㆍ완구 업체들은 폐업한 곳이 많고 남아 있더라도 관련 문서 자료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 없어서 주로 구술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장난감 콘텐츠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놀이 문화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를 당당한 문화로 인정해줬다면 국내 업체들도 살아남았을 텐데 프라모델 문화가 음성화되니 업체들은 복제에 의존해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내놓다가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사라졌습니다.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책에 소개된 3,000여점의 장난감은 현 작가가 모은 수십만 점의 골동품과 잡동사니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장난감부터 만화책, 잡지, 우표, 음반, 학용품, 생활용품, 성냥갑, 심지어 노래방 전단까지 모은다. 대학생 땐 죽은 사람의 유품을 주워왔다가 어머니에게 혼난 적도 있단다. 그가 수집하는 것들은 대부분 비싸고 폼 나고 근사한 것보다는 초라하고 저렴하며 허름한 일상의 물건들이다. 그는 “박물관에는 왕과 귀족의 물건들을 모아놓지만 서민들의 물건만 볼 수 있는 곳은 없다”며 “내 삶에 영향을 줬던 물건들부터 모으기 시작해 내가 살아온 시대의 유물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현 작가는 서울대 공예과를 나와 편집디자인 일을 하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일자리를 잃은 뒤 문방구가 사라지기 전 장난감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3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먼지 쌓인 완구와 학용품을 모았다. 일본에 가서 구해오거나 해외 경매사이트에서 사기도 했다. 프리랜서로 만화와 일러스트를 그리고 수필과 여행책을 써서 돈도 꽤 벌었지만 대부분 수집에 쏟아 부었다. 그는 “처음에는 아내 몰래 작업실에 숨겨 놓았다가 몇 년 뒤 들통이 났다”며 “벌어서 모았으면 강북에 아파트 한 채는 샀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훨씬 좋다”고 했다.

현 작가의 캐릭터는 ‘포르노’와 ‘랄랄라’를 합성한 ‘뽈랄라’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며 즐기는 ‘길티 플레저’를 유쾌하게 드러내는 것. 어른들 세계의 체면과 규범 따윈 상관 없다는 듯 헐렁하고 자유롭게 즐기며 사는 인생이다. 2001년 펴낸 ‘뽈랄라 대행진’을 비롯해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 ‘뽈랄라 대행진’ 등의 저서에 그대로 묻어난다.

그의 ‘뽈랄라 인생’은 쉼 없이 이어진다. 최근 1970, 80년대 청소년들의 성과 놀이문화를 다룬 ‘19금의 사생활’을 탈고했고 곧 웹툰 연재를 시작할 예정이다. 물론 장난감과 수집품에 관한 일도 있다.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주로 책 작업이죠. 국산 장난감 도감도 내고 싶고 학용품에 관한 책도 쓰고 싶어요. 제 세대인 40대, 50대 아저씨들의 문화에 관한 책인 ‘오빠생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브컬처 분야는 미개척 황무지 같아요. 제가 이렇게 길을 터놓으면 다음 세대가 이어가지 않을까요.”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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