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과 울산시가 국보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으로 추진해 온 가변형 임시 물막이 방식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고 다른 대책을 강구할 움직임이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설치가 끝났어야 할 임시 물막이가 모형 실험 단계에서 여러 문제 등이 발생함에 따라 이 방식 철회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문화재청은 26일 경기 광주에서 포스코 A&C가 제작한 임시 물막이 모형 실험을 위한 사전 실험 중 개스킷(판 연결 장치) 누수로 28일로 예정됐던 2차 모형실험을 5월 초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포스코 A&C가 전날과 이날 진행한 실험에서는 잇따라 문제가 발생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개스킷 누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실험 중 실제 수압(1.3bar)에 도달하기 전 누수 현상이 나타났다. 개스킷에서 물이 샐 경우 수압이 분산돼 정확한 실험 결과를 확보할 수 없어 모형 실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전 실험에서 문제가 생기자 울산시는 “사실상 임시 물막이 자체가 실패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문화재청도 “임시 물막이는 철회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 이 방식 도입에 회의적임을 분명히 했다. 문화재청 당국자는 “문화재위원회에서 지금 방식을 개량할지, 아예 다른 방식으로 할지 검토할 것”이라며 “어쨌든 지금대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형설계 작업을 맡은 포스코 A&C 함인선 수석기술고문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이날 실험은 개스킷 접합부 누수 발생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 주변부에서 물이 샜기 때문에 실험은 사실상 성공”이라고 정반대 주장을 폈다. 함 고문은 “실험 과정인데 벌써 실패라고 속단하는 것은 공학에 대한 몰이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울산시는 한술 더 떠 포스코 A&C가 사전 실험에 실패한 뒤 모형을 해체ㆍ분리한 데 발끈해 “법적 제재도 검토 중”이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문화재청 당국자도 “울산시 허가 없이 임의로 설비를 철거한 것은 법적 책임을 물을 일”이라고 거들었다. 포스코 A&C 측은 “(울산시 등에)실험을 보완하겠다고 얘기했고 보완을 위해 분리한 것뿐”이라며 “지금까지 수백 번 해왔던 세부 작업을 이번에는 허락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실험이 진행 중인 임시 물막이는 암각화에서 16~20m 떨어진 지점에 반원형으로 세우는 길이 55m, 너비 16~18m, 높이 16m의 임시 제방을 말한다. 대곡천 수위에 따라 물에 잠겼다가 외부에 노출되는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와 해체가 수월한 거대한 벽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당초 지난해 완공 예정이던 이 물막이는 2015년 3월 기술검증평가단 회의에서 모형 실험과 외부 기술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설치 일정이 늦춰진데다, 이번에 모형 실험마저 연기된 것이다.
임시 물막이를 암각화 보존 방법으로 정한 것을 두고 졸속 결정이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문화재위원회는 2008년부터 2013년 3월까지 울산시가 네 차례에 걸쳐 제안한 다양한 보존방법을 원형 경관과 환경 훼손 등의 이유로 모두 보류ㆍ부결시켰다. 그러나 2013년 4월에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발언하고 불과 2개월 만에 임시 물막이 방식이 결정됐다.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서 “관료주의의 폐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물막이 방식으로 보존 여부는 5월 모형 실험 뒤 나온 기술검증평가단의 평가 보고서를 문화재위원회가 검토해 최종 결론을 내린다. 울산시는 지금까지 ▦터널형 물길 변경 ▦임시 제방 설치 ▦차수벽 설치 ▦생태 제방 등을 이용한 암각화 보존을 제안했지만 문화재위원회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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