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사무 변경…약식명령 사건만 맡기로
평소 알고 지내던 법조 브로커와 저녁 자리에서 만나 수감 중인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 로비를 받은 현직 부장판사가 사건 당사자를 대면하지 않는 재판만 맡게 됐다. 그러나 판사와 브로커의 ‘검은 커넥션’ 의혹이 법조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어 법원의 재판부 변경 조치만으론 철저한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은 29일 정 대표의 항소심 배당을 받았던 임모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2기)가 5월 2일부로 약식명령 사건만 처리하는 형사단독재판부로 사무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임 부장판사는 앞으로 소액 벌금형의 경미한 범죄에 한해 검찰이 약식 기소한 사안을 주로 서류만 보고 처리하게 된다. 법원은 당사자를 대면하는 정식재판청구 처리는 임 부장판사의 업무에서 빼는 것을 검토 중이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인사조치에 대해 “임 부장판사가 스스로 사무분담의 변경을 신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부장판사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에서 법정에서 직접 (사건 당사자들을) 대면하는 형사합의부 재판을 계속 맡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고 법원은 전했다.
임 부장판사는 정 대표의 항소심 첫 배당을 받은 지난해 말 브로커 이모(56)씨와 서울 강남의 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다가 정 대표 사건 얘기를 들었다. 임 부장판사는 다음날 사건 검색 뒤 재배당을 신청해 정 대표 도박사건 재판을 회피했지만, 부장판사와 브로커가 2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것 자체가 사법정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심지어 임 부장판사는 사기 골프와 카지노 사기도박을 일삼은 정모(64)씨와 지난해 11월 말 해외여행을 7박 9일간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정씨도 법조브로커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한국일보 보도 등으로 현직 부장판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됐는데도, 법원은 “부정한 청탁을 받아들인 비위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판사와 브로커의 친분 자체는 심각한 문제라고 보지 않고 있다. 브로커 이씨를 만난 다음날 임 부장판사가 곧바로 재배당 신청을 했고, 정씨의 경우 그가 사기골프ㆍ사기도박꾼인 건 맞지만 임 부장판사는 그의 실체를 몰랐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판사가 브로커와 친분관계에 있다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사법부의 본질적인 원칙, 즉 재판과 법관의 독립성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는 사법체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국민들에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식을 심어주고 결국 재판부와 연고가 있는 자를 찾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법관으로서 재판과 관련된 제3자를 함부로 만나선 안 된다는 윤리의식이 결여된 점이 법원 설명에서 엿보인다”며 “임 부장판사의 비위사실을 자백하는 면이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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