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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N툰]“알콩달콩 사랑에 장애가 있나요?”

입력
2016.04.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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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때 교통사고로 오른 팔과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지만 예쁜 아내를 만나…." 혀를 끌끌 차며 눈물을 모으고 있었다면 머쓱할 수 있다. 2018평창패럴림픽에 국가대표로 참가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장애인 스노보더 박항승(29·지체장애 1급)씨와 그의 동반자인 연극강사 권주리(30·여)씨는 유쾌하다.

장애인-비장애인 부부인 두 사람은 어디를 가나 '다양한 이유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들의 사랑 얘기가 담긴 블로그 누적방문자만 2,974만여명(싸이월드 및 네이버 합산)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에 대해 일침을 가하면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부부를 지난 25일 저녁 경기 성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스노보드를 어떻게 배우게 됐나.

항승: 주리씨는 겨울마다 스키장에 살 정도로 보드를 좋아한다. 5년 전 연애를 시작할 무렵 보드를 타러 스키장에 가는데 같이 갈 수 있겠냐고 묻더라. 주리씨가 마냥 좋아서 무작정 함께 가겠다고 했다.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직접 보드를 타보니 되더라.

주리: 보드 타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몰라서 난감했다. 의족에 수건을 두르고 테이프로 감은 후 보드화를 신게 했다. 일단 껴안고 슬로프를 내려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항승씨가 나보다 잘 탄다.

Q 장애가 방해요소가 되진 않았나.

항승: 스노보드는 다리를 지탱하는 근육과 양팔의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당연히 힘들고 다리가 아프긴 하지만 재미있고 즐겁다. 보드를 타고 내려올 때 아찔한 해방감이 좋다.

주리: 쉬운 일은 아니다. 지켜만 봐도 마음이 아프다. 오랜 시간 보드를 타면 의족이 맞닿는 부분 살이 짓무르고 피고름이 뚝뚝 떨어진다. 언젠가는 무릎이 뒤틀려 슬로프에 주저 앉기도 했다.

항승: 그래도 이 취미가 우리 사이를 끈끈하게 해줬다. 매년 겨울이면 스노보드를 타러 갈만큼 죽이 잘 맞는다. 그래서 결혼식도 스키장에서 스노보드를 타며 했다.

주리: 6만원 짜리 웨딩드레스를 빌려 입고, 신부대기실도 없는 곳이었지만 우리 부부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결혼식이었다.

항승: 정말 좋았다. 결혼식 사진만 봐도 행복하다. (웃음)

Q 결혼 후 가장 좋은 점은.

항승: 결혼 전에는 주리씨가 아프거나 힘들면 바로 달려갈 수 없으니 걱정이 됐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을 덜었다.

주리: 외롭지 않은 거. 자주는 아니어도 같이 밥 먹는 시간이 좋다. 항승씨의 요리 실력이요리사 뺨친다. 박셰프라 부른다.

Q 한 손으로 요리하기 어렵지 않은가.

주리: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 항승씨가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잘한다. 최근엔 탕수육과 삼겹살 파김치찜을 만들어줬다.

항승: 주리씨는 요리를 싫어하더라. 그래서 주방은 내 거다.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들어 있는지, 어떻게 하면 알뜰하게 먹을 수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내가 요리를 하니 아내가 청소를 하는 것으로 가사 분담을 했다. 하하. (웃음)

Q 결혼 후 남편의 신체적 장애를 실감한 적은 없나.

주리: 항승씨는 집안에선 의족을 빼고 무릎으로 생활한다. 데이트 할 땐 나보다 키가 컸는데, 집에선 내가 남편을 내려다 보니 어색했다. 지금은 신경 안 쓰인다. 결혼 초기엔 내가 더 배려하고 집안일을 많이 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항승씨가 나를 세심하게 챙겨준다. 지금은 서로 잘 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고. 살다 보면 신체적인 장애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성격 차이가 문제지.

Q 장애인-비장애인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의 폭력성을 지적한 주리씨의 글이 SNS에서 화제였다.

주리: 남편과 함께 외출을 할 때면 우리 부부를 향하는 불편한 시선들을 느낀다. '어머, 남자가 한 팔이 없네, 여자는 장애인 아닌가, 사지는 멀쩡해 보이는 데 정신은 괜찮은가'라는 복잡 미묘한 시선들. 물리적 폭력이 아니어도 혐오의 시선들은 장애인들에게 상처다.(▶ SNS 글 보기 )

항승: 주변을 둘러보면 장애인들이 눈에 띄지 않을 거다. 사실 존재하는데. 장애는 감춰야한다고 사회적으로 학습되니까.

Q 어떻게 장애를 극복하게 됐나.

항승: 나만 해도 어릴 땐 의족을 감추기 위해 긴 바지만 입었다.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자존감을 회복한 것 같다. 선생님들이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밥만 잘 먹어도 칭찬을 받았으니. 그때 용기를 낸 후로 여름엔 늘 반바지를 입는다. 물론 모든 시선은 내게 쏠리지만 이제 상황을 즐긴다.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으로.

Q 장애인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하는 비장애인도 있을텐데.

항승: 한 번은 패스트푸드점에 갔는데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다 주더라. 호출기를 들고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던 손이 겸연쩍었다. 평범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키가 큰 친구가 있으면 작은 친구도 있는 것처럼. 장애가 있어서 특별한 것도 도움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다.

주리: 교과서적인 답이다. 하하. 만약,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타고 가는 장애인을 만난다면, 물어보면 된다. 도움이 필요한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과한 친절은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주리씨는 대학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장애학생들을 상대로 연극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Q 항승씨가 결혼 후 안정된 직업(특수교사)을 접고 평창장애인올림픽 출전에 도전하고 있는데.

항승: 기간제 교사여서…. 정규직 되기 힘들더라. (웃음)

주리: 정교사였다면 쉽게 허락하지 못했을 것 같다. (웃음) 나는 20대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며 살았지만 항승씨는 대학 졸업 후 경제적으로 자립한 이후 줄곧 성실하게 밥벌이를 해온 남자다. 늦기 전에 남편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지지하기로 했다. 물론 외벌이가 되니 자녀 계획도 늦춰야 하고 저축도 못하고 있지만 인생에 있어 행복은 중요한 가치니까. 지금이 중요한 것 같다.

Q 운동 선수로서의 삶은 어떤가.

항승: 평창패럴림픽에 스노보드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는 얘기를 듣고 도전해보기로 맘 먹었다. 마침 지난해 대한장애인스키협회에서 파라스노보드팀을 창단했는데 현재 그곳에 소속돼 훈련하고 있다. 선수는 나를 포함해 총 4명이다. (장애인 스노보드 종목은 전세계적으로 등록선수가 100여명에 불과하다.) 훈련기간엔 아침 먹고 보드 훈련, 점심 먹고 보드 훈련, 근력·체력운동. 저녁엔 훈련일지 작성하고 영상 분석까지. 고되고 힘들다. 특히 근력운동이 만만치 않다. 본래 의족을 사용하는 오른쪽 허벅지는 근육이 없다. 보드를 전문적으로 타다 보니 의족에 근육이 하나도 없어서 약점이 되더라.

주리: 항승씨의 목표는 올림픽 출전에 맞춰져 있다. 지난 3월엔 미국 콜로라도 쿠퍼마운틴 스키장으로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당시 열린 IPC 국제 스노보드 대회에서 보드크로스 뱅크슬라룸 두 종목에 참가했고. 오는 7월엔 국가대표 선발전이 예정돼 있다.

Q 아내의 특별한 내조가 있나.

주리: 없다. 민망하게도 정말 없다. 남편이 훈련 때문에 선수단에서 생활하니 주말부부를 해야 한다. 잘 챙겨줄 겨를도 없지만, 원래 특별히 배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항승씨가 나를 살뜰히 챙긴다.

항승: 주리씨가 옆에 있는 게 내조다. 존재 자체로. (웃음) 미국 전지훈련때 경험해보니 아직 세계 상위권 선수들에 비해 내 실력은 부족하더라. 메달권에 들 수 있도록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글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사진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항승·권주리 부부 제공

FRESHBOX FILM 제공

속기 위은지 인턴기자

디자인 백종호 디자이너 jong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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