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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아빠는 몰랐다 "아들이 방안서 폐 굳어 죽어갈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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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아빠는 몰랐다 "아들이 방안서 폐 굳어 죽어갈 줄은..."

입력
2016.04.3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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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다섯 살 아들 잃은 김덕종씨

‘인체에 무해’ 광고 믿은 대가 너무 커

이젠 둘째가 기침만 해도 가슴 철렁

남은 가족들 피해조사 언제 될는지…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며 1인 시위 중인 김덕종(사진 왼쪽)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제공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며 1인 시위 중인 김덕종(사진 왼쪽)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제공

“아빠가 119 구급대원인데 정작 아들이 방 안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사람 살리겠다고 배운 의학지식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김덕종(40)씨에게 5월은 비극의 계절이다. 7년 전인 2009년 5월 7일 아들 승준(사망 당시 5세)이를 그는 가습기 살균제로 잃었다. 경북 칠곡소방서 구급대원인 김씨는 10년 넘게 다른 이의 생명을 구했지만 정작 아들의 딱딱해진 폐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상세불명(원인불명)의 폐질환’이 아들에 대한 진단이었다. 2년 뒤 정부 발표에서야 김씨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 그 주범이라는 걸 알았다. 승준군은 2014년 정부 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망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거짓 광고를 믿은 대가는 너무 컸다.

김씨 가족에게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승준군의 동생인 둘째 아들(6) 옆에서도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 아이가 기침만 해도 김씨는 2009년 초 승준군이 감기와 폐렴 증상을 보였던 기억에 가슴이 철렁 한다. 온 가족이 지난해 정부 3차 피해조사에 접수했지만 지금까지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3차 조사에 752명이 몰렸는데도 조사기관은 여전히 서울아산병원 한 곳뿐이라 피해자들은 언제 순번이 돌아올지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5월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 옥시의 모기업인 레킷벤키저 본사를 1주일간 항의 방문했다. 지금은 주말마다 상경해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공무원 신분이라 눈치가 보이지만 김씨는 “아들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말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라며 “주변에선 안 좋은 일은 그만 잊으라 하지만 이를 잊는다면 참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쓰고 아내를 잃은 이예도씨는 "2015년 아내가 정부의 피해 판정을 받고는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고 말했다. 한달 뒤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났다. 대전=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가습기 살균제를 쓰고 아내를 잃은 이예도씨는 "2015년 아내가 정부의 피해 판정을 받고는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고 말했다. 한달 뒤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났다. 대전=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아내 1주기 앞둔 이예도씨

숨 가빠 입원 중에도 ‘좋아질까’ 하고

가습기 틀던 모습 생각하면 기막혀

피해 판정 받고 회복 희망 가졌는데…

대전에 사는 이예도(48)씨도 다음달 9일 아내의 1주기를 맞는다. 그는 “160㎝의 키에 투병 생활로 몸무게가 40㎏도 안 나갔던 앙상한 아내가 내 기억 속 마지막 모습”이라고 말했다. 아내 이시연(사망 당시 45세)씨는 지난해 5월 4일 충남대병원에 입원해 닷새 만에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아내는 둘째 아들을 출산한 2001년부터 10년 가까이 겨울철에 매달 옥시 제품을 3~4개씩 사용했다.

살균제를 사용하면서 아내는 각종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살았다. 결핵 증상이 있어 약을 먹는가 하면 2002년에는 간질성 폐렴 진단을 받아 병원을 내 집처럼 오갔다. 폐가 굳어 정상인의 3분의 1만 호흡이 가능했던 아내는 오히려 가습기에 더 의존했다. 이씨는 “병실에서도 가습기는 꼭 틀고 있었는데, 호흡기에 좋을까 일부러 가까이 대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고 울먹였다.

지난해 4월 정부 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판정을 받은 아내는 기업이나 정부를 원망하기는커녕 “이제 치료비를 받을 수 있으니 마음껏 수술을 받아 건강해질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한 달 뒤 그녀는 숨을 거뒀다. 이씨는 “뒷바라지가 힘들어 이러다 가족들도 다 죽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미안하고 보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을 괴롭히는 응어리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죄책감이다. 김씨는 가습기 살균제 업체의 뻔뻔함보다, 아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더 괴롭다고 말한다. 이시연씨의 둘째 아들(16)은 자신이 태어나면서 엄마가 아팠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다고 한다. 위생에 민감한 이들일수록, 그래서 살균제를 찾아 쓴 이들일수록 상처는 더욱 크다. 아이를 잃은 뒤 “깔끔 떠느라 살균제를 썼다가 아이를 죽게 만들었다”며 싸우다 갈라선 부부들도 적지 않다. 강찬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대표는 “가족을 위해 집안에 들인 물건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점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며 “간접적으로 가족을 해쳤다는 자괴감 때문에 속으로 삭이며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전=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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