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 先보상 後구상권 청구”
2014년 야당 한정애 의원 대표 발의에
형평성 위배와 재정 문제 들며
정부-여당서 줄기차게 반대
朴대통령 최근 질타에 與 뒷북
당시 내용 그대로 제정 추진 씁쓸
“정부가 먼저 피해 보상을 해주고, 나중에 옥시 등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폐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부위도 손상을 입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29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밝힌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질타하자 곧바로 나온 대책으로, 특별법 제정 논의는 어떤 식으로든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야권의 특별법 제정 주장을 못 들은 척 하고, 관련 법안을 수 차례 낼 때마다 줄곧 반대해오다 대통령 한 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꾼 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그 사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법안들은 상임위에 계류 된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과 회의록시스템에 따르면 김정훈 의장의 두 발언 중 첫 번째 내용은 2014년 3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환경보건법 일부개정안’과 거의 같다. 피해자 및 유족에게 치료비, 생활비 등을 우선 지원하고 책임 기업에 대해 추후 정부가 구상권을 행사하는 내용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정부의 재정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를 담았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2일 국회 환경노동위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이게 되면 보상 요청이 증가해 정부로서는 부담이 있다”고 반대했고, 환노위 소위원장을 맡은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도 “환경성 질환 사고만 정부에서 선보상 후 구상권을 행사하면 교통사고, 범죄행위 등 다른 피해 국민들과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반대했다. 특히 지난해 4월 27일에는 권 의원이 회의를 시작하면서 “그냥 넘어가지요, 뭐. 저는 반대입니다”라고 했다가 더민주 의원들과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피해 구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앞서 2014년 10월 23일 환경부에 대한 환노위 국정 감사에서 “잠복기가 긴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피해 신고 기간을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김영주 위원장 질의에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의사들 의견을 들어 봐 가지고 필요하면 방안을 강구하겠다”고만 답했다. 정부의 관리 소홀로 사단이 났지만 피해 구제에 나 몰라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은 요양급여 등 구제급여 지급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 수준의 피해구제법안인 장하나 의원의 법안 심사에서도 나타났다. 2013년 6월 26일 열린 상임위 소위에서도 김성태 의원은 “특별법 제정에 대해 정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하자, 장 의원은 “피해자들이 나라도 없고, 국적도 없는 사람처럼 방치되고 있는데 입장 정리가 3년이 되도록 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한 의원 법안 외에도 요양급여 등 구제급여 지급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 수준의 피해구제법안 등이 환노위에 계류 중이다. 정부 여당의 반대로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 운명에 처했던 이들 법안이 빛을 볼 단초가 마련된 셈이다. 더민주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이야기하는 구제 방안은 이미 발의된 법안에 대부분 포함돼 있고, 상임위를 가동하면 바로 처리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박진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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