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재계는 의외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371억달러(약 42조1,700억원)에 달하는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수주가 가시화할 것이란 게 청와대의 발표지만 “본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청와대가 대 이란 경제 외교 성과로 공개한 30건의 건설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 가운데 실제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것은 가계약한 이스파한-이와즈 철도사업, 박티아리 수력발전 사업 등 6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양해각서(MOU) 등을 체결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 한 기업 관계자는 “MOU 체결은 양쪽이 사업에 대해 지금부터 논의해보자고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며 “MOU를 파기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의 실제 수주를 낙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 입장에선 똑 같은 내용의 MOU를 우리 기업뿐 아니라 중국 등 다른 국가 기업들과도 얼마든지 맺을 수 있다”며 “결국 여러 기업들이 제시한 조건을 보고 이란이 선택을 하는 것인 만큼 실제 본계약 성사 여부는 이제부터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양국의 대통령까지 나서서 주선한 MOU인데다 청와대는 “수주가 거의 확실시되는 프로젝트만 공개했다”고 설명했지만 재계는 “법적 구속력을 높이려 했다면 MOU가 아닌 본계약, 적어도 가계약을 체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소 임원은 “대통령의 정상 외교를 통한 MOU라고 해서 구속력이 더 높아지는 건 아니다”며 “구속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진핑 중국 주석처럼 계약을 따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란 등 중동 3개국을 방문할 당시 이집트와 전력, 운송, 인프라 분야에서 150억달러(약 17조원)의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의사결정 과정이 상대적으로 느린 중동 쪽 비즈니스의 특성과 당장 재원이 부족한 이란의 상황도 변수다. 재계 관계자는 “이란은 사업자가 금융 등을 통해 예산을 확보한 뒤 사업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수준의 금리로 얼마나 투자를 유치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이제부터 노력하더라도 빨라야 1~2년 뒤 성과가 나올 텐데 MOU 체결만으로 장밋빛 전망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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