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논쟁할 수 없다’는 금언(金言)에서 취향(taste)의 사전적 제1 의미는 ‘입맛’이다. 미슐랭 3스타 셰프가 만들었어도 내 입에 맛없으면 ‘맛없는 음식’. 하지만 주관이 한 방향으로 결집되면 어느새 그것은 객관이 된다. 스타벅스가 여전히 원두커피의 상징인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 근거 중 하나는 전 세계가 (거의) 공인(하다시피)한 ‘맛’이다.
국내 3대 편의점이 원두커피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에스프레소 머신 또는 드립머신을 매장에 구비해놓고 주문과 동시에 뽑아주는 즉석 아메리카노가 뜨거운 인기를 끌면서 편의점마다 머신 도입 매장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다.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이 GS25 247%(3월 기준), 세븐일레븐 295.8%(1분기), CU 62%(1분기)에 달한다. 가격은 1,000원(세븐일레븐), 1,200원(GS25, CU)으로 스타벅스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4,100원)와 비교하면 4배 가까이 싸다.
1,200원짜리 커피가 과연 먹을 만한 맛일까 직접 검증해보기 위해 복면기자단이 출동했다. CU의 바바커피(구메뉴)와 겟커피(신메뉴), GS25의 카페25, 세븐일레븐의 ‘세븐카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조태성, 박선영, 황수현, 이윤주, 김혜영, 신은별 기자, 한소범 인턴기자 외에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만점을 기록한 김범수 문화부장이 토크에 참여했다.
발이스타=GS25는 일단 컵이 합격이다.
낮술 마신 밤의 여왕(이하 여왕)=1,200원짜리인데 있어 보인다. 기계도 특1급호텔, 독일수입차 VIP 라운지에 보급돼 있는 1,000만원대 머신이라고 한다.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 같다.
발이스타=컵 디자인처럼 맛도 쓴맛, 신맛 모두 최대한 강하게 냈다. 강배전이다.(일동 탄성)
하염없이싸이는뱃살(이하 싸이)=스타벅스도 비슷한 맛 아닌가.
뻣뻣한 캣츠걸(이하 캣츠걸)=세븐일레븐 커피는 맥심에 물 탄 느낌이다.
여왕=세븐일레븐만 드립 방식이다. 나머지 두 곳은 에스프레소 방식이다.
행복하슈렉(이하 슈렉)=내 ‘개취’(개인의 취향)에는 세븐카페가 제일 좋다. GS커피는 너무 탄 맛 느낌이 강하다.
발이스타=연하게 먹는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겠다.
여왕=난 그게 그거 같다. 구분을 못하겠다.
발이스타=CU가 제일 훌륭하다.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고, 맛의 밸런스가 잘 맞는다.
아연한맨(이하 맨)=나는 GS25가 최고다. 집에서 아무리 진하게 내려도 이 맛이 안 난다. 에스프레소와 가장 가까운, 목구멍이 타 들어 가는 느낌이 GS25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여왕=사실 맛보다는 가격경쟁력이 중요하지 않나. 편의점끼리 경쟁한다기보다 커피전문점과 비교해봐야 하지 않을까. 편의점 커피가 1,200원으로 이 정도 맛을 낸다면, 내 주관적 느낌으로 스타벅스는 2,300원 정도 하면 딱 맞을 것 같다.
맨=난 2,500원.
발이스타=편의점커피가 가격 대비 훌륭하긴 하다.
맨=가격이 제일 큰 장점이다. 맛의 차이는 솔직히 확연하다. 비슷한 가격이면 당연히 스타벅스 먹는다.
여왕=스타벅스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던 2002년 우리나라 시간당 최저임금이 2,275원이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3,000원을 훌쩍 넘었고. 한 시간 일해서 커피도 한 잔 사먹을 수 없는 이상한 나라라고 쓴 외국인 필자의 글이 한국일보에 실린 적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6,030원이니 커피 한 잔 먹고 1,270원 남긴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임금 수준이나 물가에 비해 커피값은 여전히 지나치게 비싸다. 그런데도 매일 먹는다.
맨=현재 성인 1인당 연간 커피소비량이 484잔이라고 한다.
아귀여워(이하 아귀)=스타벅스는 다르게 봐야 하지 않나. 사실 비싼 돈 주고 커피를 사먹는다기보다는 공간 이용료로 지불하는 거다.
여왕, 맨=그럼 테이크 아웃 할인을 해야지.
아귀=전기 콘센트 같은 서비스 이용하면 덜 아깝다. 그런데 커피빈은 정책적으로 그걸 안 한다더라. 콘센트 없냐고 물었더니, 직원이 ‘사람과 시간에 집중하라’는 의도에서 콘센트 안 만든다고 설명하더라.
여왕=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슈렉=그런데 이 비싼 가격에도 와서 다 사는데 굳이 깎아줄 이유가 있나.
여왕=어느 고가 의류브랜드에서 제조 원가 1,000원대인 모자를 헐값에 파는 사은행사를 하려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고 한다. 서울역 노숙자들이 쓰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냐고 회의에서 누군가 말했더니 바로 없던 일이 됐다는 거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커피전문점도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고가전략을 펴는 것이다.
발이스타=나는 저개발 지역에서 착취에 가까운 저임금으로 생산되는 원두가 이렇게 비싼 커피로 팔리는 게 화가 난다.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벤트성이고, 그런 커피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자꾸 사니까 기업들이 오만해진 것이다.
캣츠걸=한국 접대문화의 특수성도 있다. 꼭 연장자가 밥값을 내고, 아랫사람들은 커피를 사는데, 양심상 편의점 커피를 살 수는 없다.
아귀=많은 사람들이 더치페이 문화는 정 없다고 생각하는 게 스타벅스 등이 잘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스타벅스는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왕=몰랐다. 그리고 놀랐다. 앞으로는 김밥천국에서 밥 사고 편의점 커피 사주는 걸로 하자. 그런데 왜 다들 아메리카노만 먹을까.
발이스타=문화적으로 미국의 속국이어서?(웃음)
여왕=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노 달라고 했더니 짜증내긴 하더라.
싸이=노동시간과 강도 때문 아닐까. 원두커피가 없던 시절, 의대 레지던트들이 하루 종일 잠 못 자고 맥심을 연하게 타서 보리차 먹듯 항상 마시고 있는 것을 본 적 있다.
여왕=결국 각성제 역할이다. 커피마니아인 옆자리 기자는 중국이나 영국의 차문화가 쉼, 힐링, 소통의 문화인 것과 달리 한국에서 커피는 노동을 위한 필수 자재라고 하더라. 노동현장에 투입되기 직전 혹은 도중, 장전하는 총알 같은 것.
캣츠걸=커피에는 플라시보 효과가 있다. 차도 카페인이 있지만 꼭 커피를 먹어야 각성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아귀=나는 요즘 아침마다 커피 대신 스누피를 마신다. 에너지음료 핫식스의 4, 5배에 달하는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우유인데 값도 싸다. 가성비가 훌륭한 제품이다. 먹으면 ‘스누피가 뺨 때리는 기분’이라는 말이 이해가 될 거다.
슈렉=직장인의 수액주사?
여왕=핫식스의 5, 6배? 정부는 설탕이 아니라 카페인과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한프물범=그러려면 노동시간을 줄여줘야 한다.
슈렉=사람들이 연차를 쓰고 반차를 내야 할 시점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거다.
여왕=전문가들은 디저트 문화의 확산으로 아메리카노 헤게모니를 설명한다. 단 것 먹으려면 쓴 음료가 필요하니까.
싸이=음식평론가 황교익은 숭늉을 우리 차로 보더라. 양식은 본식이 맹맹하고 디저트는 무조건 달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김치찌개처럼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서 숭늉처럼 심심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거다.
캣츠걸=칼로리 때문이라고 본다. 제로 칼로리라서 선택했고, 거기에 익숙해진 거다.
발이스타=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커피만 먹는 문화는 좀 개선될 필요가 있다. 녹차도 있고 홍차도 있는데 너무 커피만 먹는다. 차 문화가 얕다.
여왕=차 문화랄 것도 없다.
발이스타=한국 편의점이 1,000원 남짓한 가격으로 이 정도 맛을 낼 수 있다는 데 한국인으로 자긍심도 느껴진다. 하지만 커피 일색인 문화는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편의점들이 홍차나 녹차 같은 것도 만들어 한국 차 문화를 개선하는 데 책임감 갖고 기여했으면 좋겠다.
정리=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음료별 카페인 함량(성인 일일 권장량: 400㎎)
-믹스커피: 48㎎
-자판기 커피: 53㎎
-핫식스: 60㎎
-레쓰비 마일드 커피: 79㎎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150㎎
-스누피 커피 우유: 237㎎
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한국소비자보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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