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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한 ‘차붐 부자’의 특별한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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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한 ‘차붐 부자’의 특별한 5월

입력
2016.05.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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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이촌동 한강시민공원 내 ‘차범근 축구교실’ 운동장에서 열린 초등부 페스티벌 시상식에서 참가자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왼쪽부터 백지훈, 조원희, 차범근, 차두리, 염기훈) 차범근 축구교실 제공
지난 1일 서울 이촌동 한강시민공원 내 ‘차범근 축구교실’ 운동장에서 열린 초등부 페스티벌 시상식에서 참가자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왼쪽부터 백지훈, 조원희, 차범근, 차두리, 염기훈) 차범근 축구교실 제공

‘차붐’은 어디를 가나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는 팬들에게 둘러싸인다. 현실적으로 모두 응할 수는 없는 노릇. 원칙이 있다.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는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은 외면하지 않는다. 차범근(63)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꿈나무 육성을 가장 큰 소명으로 삼는 건 가장 차붐다워 보인다. 1988년 ‘차범근 축구대상’을 만들어 이동국(37ㆍ전북)과 박지성(35ㆍ은퇴), 기성용(27ㆍ스완지시티), 황희찬(20ㆍ잘츠부르크), 이승우(18ㆍFC바르셀로나) 등을 배출했다. 1990년 ‘차범근 축구교실’을 열어 한국 축구에 처음 유소년 육성의 개념을 심었다. 올해로 26년 째인 ‘차범근 축구교실’은 매년 5월 특별한 페스티벌을 연다. 회원과 그 가족들을 초청해 울고 웃으며 축구를 즐기는 축제의 마당을 마련한다. 올해는 이촌동 한강시민공원 내 축구교실 운동장에서 5월 1일 초등부, 5월 5일 유치부로 나눠 개최했다. 귀한 손님도 왔다. 차붐 주니어 차두리(36)다. 작년 11월 선수 은퇴 후 독일에서 지도자 자격증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차붐 부자는 행사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운동장 한 쪽 좁은 사무실로 향했다.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350개가 넘는 축구공에 하나하나 친필 사인을 했다. 꼬박 2시간 가까이 좁은 의자에 앉아 “내 팔이 아닌 것 같아요(차두리)” “아유 덥다. 창문 좀 열어봐(차붐)”라고 하면서도 공을 받고 기뻐할 아이들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차붐 부자는 350개에 달하는 축구공에 하나하나 사인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윤태석 기자
차붐 부자는 350개에 달하는 축구공에 하나하나 사인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윤태석 기자

차두리는 축구교실 1기생이다. 지금 회원들의 까마득한 선배인 셈. 얼마 전에는 축구교실 이사로 공식 등재됐다. 차 감독은 “두리가 차기 회장을 해야지. 잘 이어갈 거야”라며 기대를 보였다.

‘차범근 축구교실’에는 열정페이가 없다. 축구교실 코치가 12명인데 파트타임 6명을 뺀 6명과 4명의 행정직원 등 10명이 정직원이다. 이들은 4대 보험 혜택도 적용 받는다. 축구교실 출신 이학재 코치는 “다른 축구교실은 아마 4대 보험 개념조차 생소할 거다”라고 말했다. 현재 축구교실 회원이 1,000명이 넘는다. 차 감독은 “몇 년 전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으니 더 헌신적으로 일하더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눔에도 앞장선다. 매주 화요일은 모든 코치들이 소년소녀 가장이나 한 부모 등 저소득층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무료 축구레슨을 한다. 매년 가을 이들을 위한 페스티벌도 따로 연다.

차두리는 세계에서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가 풀뿌리 보급에 왜 이토록 큰 애정을 쏟는 지 잘 안다. 지금 독일에서 지도자 공부를 하고 있는 그는 최근 그곳으로 연수를 하러 온 황선홍(48) 전 포항 감독, 선수 점검 차 방문한 신태용(46)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만났다. 얼마 전에는 짬을 내 영국으로 건너가 박지성과 손흥민(24ㆍ토트넘) 이청용(28ㆍ크리스탈 팰리스) 등 전 대표팀 동료들과 식사도 했다. 차두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공부다”고 했다. 은퇴한 지 반 년 가까이 됐지만 몸은 여전히 탄탄했다. 살이 찌는 게 싫어 이틀에 한 번씩 10km 이상 달린다고 한다.

잠시 뒤 수원삼성의 염기훈(33), 조원희(33), 백지훈(31)이 찾아왔다. 차붐이 수원 지휘봉을 잡았을 때 제자들이다. 전날 FC서울과 격전을 소화해 피곤할 텐데도 짬을 냈다. 차 감독, 차두리와 반갑게 해후한 이들은 초등부 경기에서 직접 심판을 봐주며 참가자들에게 큰 추억을 선물했다.

차붐 페스티벌에서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차범근 감독과 차두리. 차범근 축구교실 제공
차붐 페스티벌에서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차범근 감독과 차두리. 차범근 축구교실 제공

시상식 때 차붐이 손자뻘 되는 아이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오늘 재미있었나요?”

“네!”

“오늘 이겨서 기쁜 사람도 있고, 져서 억울한 사람도 있죠? 축구에서 이기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매번 정해진 시간에 훈련하는 것 그게 더 중요합니다. 오늘의 추억이 나중에 꿈을 이루는데 큰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여러분을 보며 저도 더 힘을 냅니다.”

2017년 한국에서 열리는 20세 이하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차 감독은 지난 달 18일 조직위 현판식 때 “앞으로 감독 차범근은 없다”고 선언했다. 유소년 육성에 평생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차두리가 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태석 기자
차두리가 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태석 기자

차 감독이 차두리를 소개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졌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차두리가 더 스타다. 예전에는 차두리 앞에 ‘차붐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요즘은 차 감독이 ‘두리 아빠’로 불린다.

행사가 끝난 뒤 기념촬영을 위해 또 긴 줄이 만들어졌다. 환한 웃음도 꼭 닮은 차붐 부자는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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