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관계서 反제국주의 투쟁
기본노선ㆍ문장ㆍ용어 등 판박이
김정일 시대엔 거의 언급 안 된
주한미군 철수까지 튀어나오기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제7차 당대회에서 밝힌 사업총화 보고는 36년 전 김일성 주석이 제6차 당대회에서 밝힌 사업총화 보고의 판박이다. 기본 노선뿐만 아니라 용어, 문장까지 ‘보고서 베끼기’라고 할 정도로 유사하다. 다만 김 주석이 ‘조선반도를 비핵지대,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달리 김 위원장은 핵보유국을 천명한 것이 거의 유일한 차별 점이다.
김 위원장이 대외 관계를 천명한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라는 대목을 보면, 김 주석이 강조한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 반제 자주 역량 강화, ‘쁠럭불가담운동’(비동맹운동) 강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국제관계를 제국주의와 반제자주세력 간 투쟁으로 보는 1970~80년대 김일성의 세계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더 이상 실현 가능하지 않은 세계 혁명에 대해서까지 언급하고 있어 시대착오적인 냉전시대 대외관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국주의 반동세력은 어떻게 해서나 저들의 지배권을 유지해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다’(김정은), ‘제국주의, 지배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지배권을 유지 확장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다’ (김일성) 등 구사하는 문장도 흡사하다. 김 위원장은 심지어 김 주석이 중국과 옛 소련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지배주의’라는 용어도 그대로 차용, “제국주의, 지배주의 세력의 침략과 내정간섭을 반대하여 투쟁해야 한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따라 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통일방안 역시 김 주석이 내놓은 조국통일 3대원칙,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등을 그대로 늘어놓는 데 불과했다. 김 주석의 ‘우리민족끼리’를 따라 하다 보니, 김정일 시대에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주한미군 철수까지 주장하고 김정일 시대 북한이 선호했던 ‘통미봉남(通美封南)’대신 ‘통남봉미(通南封美)’가 뜬금없이 튀어나온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을 배제하고 대북 강성의 박근혜 정부와 손을 잡으려는 것은, 최근까지 북미 접촉에 목을 매온 북한 입장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전략이다.
김 위원장이 스위스에서 2년간 유학한 젊은 세대라는 점에서 김정은식 개혁이 단행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섞인 관측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84년생인 김 위원장은 개혁은 고사하고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70년대 김일성 시대에 더욱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김정은의 서구 유학 경력 때문에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며 “하지만 변화를 시도할 경우 결국 3대 세습의 정당성이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선대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3대 세습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소집한 이번 당 대회에서 어떤 직위와 호칭을 부여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최고사령관, 당 제1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장,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순차적으로 올랐다. 북한 매체들은 또 그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로 표현해온 데서 이번 당대회를 통해 3부자의 호칭을 새롭게 정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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