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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ㆍ감] 그래서 광화문 현판 색깔은 어찌 되나요?

입력
2016.05.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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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만들어진 일본 동경대 소장 유리건판에서 광화문 현퍈의 바탕색은 글씨보다 밝게 나타난다. 문화재청 제공
1902년 만들어진 일본 동경대 소장 유리건판에서 광화문 현퍈의 바탕색은 글씨보다 밝게 나타난다. 문화재청 제공
1893년 9월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스미소니언박물관 홈페이지 사진 속 광화문 현판에서는 바탕색이 글씨보다 어둡다. 문화재청 제공
1893년 9월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스미소니언박물관 홈페이지 사진 속 광화문 현판에서는 바탕색이 글씨보다 어둡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 달 22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제4차 광화문 현판 색상검토 자문회의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달 22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제4차 광화문 현판 색상검토 자문회의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달 제4차 광화문 현판 색상검토 자문회의(4차 자문회의) 직후 문화재청은 “모든 가능성을 열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어떤 것도 결정을 내리기 못했기 때문에 과학적 실험을 거쳐야 한다”는데, 사실 ‘흰 바탕, 검은 글자’로 복원한 것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겁니다. 회의에 참석한 14명 위원 가운데 대다수가 ‘적어도 흰 바탕은 아닐 것 같다’는 점에는 동의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말대로 “전문가들이 내린 결정”인데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잘못된 고증을 한다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문화재청이 주요 증거로 삼았던 국립중앙박물관(1916)과 동경대(1902)소장 유리건판 속 현판이, 새로 공개한 스미소니언 홈페이지 사진(1893년 9월 이전) 속 현판과 ‘전혀 다른 현판’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회의에서는 일단 “그 사이에 현판이 바뀐 것 같지는 않다”는 데 좀 더 무게를 둔 것 같습니다. 동경대 사진과 스미소니언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을 때 현판의 형태나 위치, 글자체와 기타 건물 부재 등이 비슷한 정황을 보면 똑같은 현판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또 경복궁 중건 작업이 1890년쯤 마무리됐다고 보면 “불과 10년 남짓 기간 동안 굳이 바탕과 글자 색을 정반대로 바꾼 새로운 현판을 만들어 달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여기에 “동경대 사진 속 글자색이 두 가지 이상의 색으로 나타나는 것은 빛의 강약에 따라 (명암이 생겨) 색이 달리 보이는 금색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더해졌습니다. 어쨌든 사진 고증에 오류가 있었다는 쪽에 힘이 실린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바탕색이 글자보다 어두웠을 것”이라 확신한 위원들도 그게 정확히 무슨 색이냐는 대목에 이르면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바탕색을 꼭 검은 색으로 단정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 먼저 나왔고 이어 “현판에 진 그림자를 볼 때 무광 검정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더해졌습니다. “다른 궁에 비해 경복궁의 중요도가 높다보니 값비싼 코발트 안료를 섞었을 수도 있다”거나 중국 자금성의 청색 바탕 현판 사례를 들며 “광화문 역시 청색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당시 기록을 근거로 주로 사용했던 석채 대신 “옻칠이 쓰였을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카메라에 필터를 썼느냐 안썼느냐, 유리건판의 조성비는 어땠느냐, 사진 복사 과정에서 색이 변하지는 않았느냐의 가능성까지 언급됐습니다. 이쯤이면 거의 모든 가능성이 거론된 겁니다. 그만큼 회의는 미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결국 위원들은 과학적 실험으로 입증하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확답을 내릴 수 없다면 그 방법 밖에 없다고 본 것이죠. 경우의 수에 맞춰 현판을 따로 제작해서 촬영하고, 그 중 과거 사진과 가장 유사한 것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계절ㆍ고도ㆍ기상 등 모든 주변 상황을 다 고려할 수 있겠느냐는 또 다른 문제는 남아 있지만, 다행히 현판 제작 당시 안료의 색 종류로 많지 않았고, 현판의 색이 벗겨졌을 가능성도 적은 만큼 실험을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아니냐는 게 위원들의 생각입니다.

물론 여전히 “1900년대 전후로 현판이 교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896년 아관파천이 일어나는 등 정치 흐름이 격변하던 시기였던 만큼 “어떤 이유에서건 현판을 바꿔 달 상황은 여럿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입니다.

문화재청은 곤혹스러운 표정입니다. 광화문 현판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문화재청이 총대는 메고 결론을 내줘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위원님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과거는 알 수 없습니다. 언제쯤 알 수 있을 지도 장담키 어렵습니다. 결국 남는 건 가장 합리적 추론일 겁니다. 어찌 보면 역사란 ‘가장 설득력 있는 상상력’일테니까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데 힘을 빼기보다는 추론 과정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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