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대한인국민회 "미주독립운동사ㆍ역사뿌리교육에 쓸 예정"
재미 독립운동가 송헌주 선생(1880∼1965)의 후손들이 국가보훈처로 받은 독립유공자 보상금을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에 전액 기탁했다.
송헌주 선생의 외손자인 김동국(82) 전 CSC 그룹 회장과 증외손자 마크 김(54) LA카운티 지법 판사는 11일(현지시간) LA의 재단에 독립유공자 보상금 1만5,600달러(약 1,825만원)을 기증했다고 연합뉴스가 12일 보도했다.
김 전 회장은 이날 기증식에서 “외할아버지는 평생 나라를 위해 힘쓴 분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이번 보상금은 우리 후손이 가져야 할 이유가 없으며 후세를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외할아버지는 국민회 회관 건립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으셨으나 결국 성사시켰다”면서 “외할아버지의 나라 사랑이 깃들어 있는 국민회에 독립유공자 보상금을 기탁하는 게 바르다고 가족들이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독립유공자 보상금 기탁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으나, 기념재단 측에서 이를 알려야 한다고 설득해 공식 기증식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권영신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이사장은 “독립유공자 후손이 보상금 전액을 기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귀중한 기부금을 재단의 올해 최대 역점사업인 웹페이지 구축과 역사 뿌리 교육 사업에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념재단은 이르면 연내 홈페이지(knamf.org)를 구축해 현재 남가주대(USC)에서 디지털화 작업 중인 미주 독립운동사에 관한 자료와 사진을 수록할 예정이다.
고양 출생인 송 선생은 서울에서 관립 영어학교를 졸업한 뒤, 하와이 이민 길에 올라 1905년 감리교 한인교회 목사로 일하면서 한인상조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하와이 지역의 한인 자치에 힘썼다. 이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대학에 다니던 중, 1907년 7월 헤이그평화회의에 참석한 밀사를 돕기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가 통역관으로 활약한 뒤 1908년 뉴욕으로 돌아갔다. 1914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프린스턴대학교에 입학해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1919년 이승만(李承晩)이 워싱턴에서 조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이듬해 하와이로 건너가 애국공채(愛國公債) 발행으로 임시정부의 재정을 후원하는 한편, 한인 학교 교사로 활약하면서 교포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34년에는 임시정부 LA 재무부 재무위원으로 활동한 뒤, 국민회(國民會) 총회관 건축위원, 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임시정부 후원과 외교 선전사업을 추진하고, 미주지역 한인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또 1941년 12월 캘리포니아주 민병대 소속 한인국방경위대가 창설되자 이듬해 2월 외교과(外交科) 정위(正尉)로 활동하면서 대일 항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 후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외교위원, 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을 역임하고, 1945년 4월에는 제2차세계대전 전후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개최된 연합국회의에 임시정부 대표로 선임되어 활발한 활동을 했다. 송 선생은 1965년 80세를 일기로 LA에서 타계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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