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미국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를 꿈꾼다?
국내 무대를 평정했던 지난 시즌까지의 모습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법하지만 중하위권을 맴돌다 이제 막 중위권으로 복귀한 올해의 성적을 떠올리면 왠지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그러나 시선을 ‘마케팅’으로 돌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새 유니폼 출시와 함께 내놓은 구단 상품의 철학은 여느 메이저리그 구단 못지 않다.
삼성은 올해 신축 홈 구장인 대구 라이온즈 파크(이하 ‘라팍’) 개장에 맞춰 새 디자인의 유니폼을 내놨다. 2008년 이후 8년 만에 출시한 새 디자인의 유니폼은 기존 핀 스트라이프가 사라지고 푸른색 바탕에 흰색이 강조돼 한층 심플해졌다. 여기에 삼성이 프로야구 원년 시절 썼던 레드 컬러로 포인트를 줘 눈길을 끌었다. 삼성과 빈폴아웃도어가 긴 협업 끝에 야심 차게 내놓은 새 유니폼에 팬들의 초반 반응은 엇갈렸다. 세련되고 깔끔해졌다는 긍정론과 지나치게 단조로운데다 붉은색 포인트가 팀 정체성을 해친다는 부정론이 맞섰다.
하지만 개막 후 팀 스토어 등을 통해 새 유니폼의 실물을 접한 팬들이 늘어나자 부정론은 점점 사라졌다. 오히려 유니폼은 물론 새로 출시된 맨투맨 티셔츠나 후드 티 같은 의류 라인에 대한 칭찬까지 더해져 입소문을 탔다.
그래서인지 개막 후 최근까지 ‘라팍’ 내에 위치한 팀 스토어는 매 경기마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새 구장이 개장하며 새롭게 오픈한 이 곳은 의류 전문 매장 뺨치는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로 야구팬들 사이에선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매장을 운영하는 김동조씨는 “홈 경기가 없는 날은 물론 경기가 아예 없는 월요일에도 꽤 많은 야구 팬들이 상품 구매를 위해 이 곳을 찾는다”고 했다. 새 유니폼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김 대표가 기대했던 수준을 크게 웃돈다. 타구단에 비해 높은 가격대, 시즌 초반의 부정론 등은 결국 기우였던 셈이다.
20대 아들과 함께 팀 스토어를 찾은 권정숙(57·경북 안동시)씨는 두 장의 새 유니폼과 선수 이름을 새기는 값까지 포함해 그 자리에서 258,000원을 결재했다. 삼성 창단 때부터 팬이었다는 그는 “지금까지 나온 유니폼 중 가장 예쁘고 세련됐다”면서 “만만찮은 가격이지만 다른 옷을 사는 데는 아껴도 이 유니폼은 꼭 사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시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는 정유리(25)씨는 이날 새로 나온 반팔 티셔츠를 커플티 삼아 구매했다. 정씨는 “야구장이 아닌 일상에서도 함께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인데다 한 장 당 3만원대의 가격도 합리적이라고 생각됐다”며 "삼성 구단 상품이라기보다 야구장 콘셉트의 일반 의류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의류 구매에 있어 깐깐한 기준을 가진 여성 팬들의 이 같은 반응은 삼성의 새 유니폼의 디자인을 주도한 신미경 빈폴아웃도어 디자인실장이 수도 없이 머릿속에 그려왔던 모습이다.
신실장이 새 유니폼 디자인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지난해 봄이었다. 올 시즌 개막 전까지 약 1년여의 기간 동안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 선수들이 최대한 가볍고 쾌적하게 경기할 수 있는 디자인과 소재 등을 연구해 적용했다. 신씨는 여기에 한가지를 더 고려했다. 바로 사업화다. 약 3년 전부터 미국, 일본 시장을 벤치마킹 하면서 삼성 라이온즈 의류의 헤리티지 사업화를 꾀했다. 그는 “미국 등 스포츠 선진국들을 가보면 구단 상품들이 일상에서 꾸준히 소비되고, 매장도 경기장에만 있는 게 아닌 도심 곳곳에 있다”며 “우리의 목표도 삼성 라이온즈의 상품들이 양키스처럼 팬들의 일상 속으로 더 파고드는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국내 프로스포츠 머천다이징 시장이 이제 막 성장해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매출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괜한 기대가 아니다. 시즌 초반 새 유니폼을 비롯한 의류 라인의 매출 규모가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 신씨는 “새 시장을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단에서 기획한 문화 행사 상품 매출로 이어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팀 스토어 관계자는 “새로 나온 의류들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많지만, 금요일과 토요일 홈경기가 끝난 뒤 열리는 클럽파티‘금토는 블루다’행사 덕에 20~30대 젊은 층의 구매가 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단순히 유니폼 몇 장, 티셔츠 몇 장이 더 팔린 데 주목하기 보다는 야구장이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