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광주의 밤, 115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발이 꽁꽁 묶였습니다. 20대 국회 당선자 워크숍의 첫날인 이날 우상호 원내대표가 공식일정을 마친 의원들을 향해 숙소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금족령’을 내린 겁니다. 이를 어길 시 추후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엄포까지 있었죠.
실제로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까지 ‘기숙사 사감’을 자처하며 숙소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의원들을 막아서기도 했습니다. 보통 의원 워크숍을 마친 후 에는 뒤풀이 성격의 술자리를 갖지만, 공식적인 뒤풀이를 없앤 것은 물론 술을 마시더라도 숙소 밖으로의 이동은 자제시킨 겁니다. 박 원내수석은 기자들과의 약속이 있다는 의원들의 팔을 잡아 끌며 “밖으로 나가면 상임위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일일이 말렸다고 합니다. 4선인 김진표 당선인까지 ‘문지기’로 나서는 바람에 의원들의 탈출시도는 결국 좌절됐다는 후문입니다. 결국 숙소 근처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푸는 것까지는 허용하는 일종의 타협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몇몇 의원들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볼멘 소리를 냈지만 우 원내대표는 금족령을 끝까지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4ㆍ13 총선에서 ‘야당의 텃밭’인 광주에서 단 한석도 차지하지 못하며 참패의 수모를 겪은 더민주의 위기감이 깔려 있습니다. 돌아선 호남민심에 회초리를 맞겠다며 광주에서 당선자 워크숍을 열어놓고 술을 마시고 해이해진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였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한 의원은 “광주시민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지켜보고 있다”며 “잘못했다며 와놓고 흥청망청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뭐라고 생각하겠나”라고 전했습니다.
이튿날인 13일에는 초선 당선자들이 오전7시30분부터 두 팀으로 나뉘어 송정시장과 양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전날 워크숍에서 초선 당선자들이 ‘광주까지 왔는데 그냥 올라갈 수 없다’며 호남 참패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아 현장을 찾겠다고 먼저 제안, 원내 지도부가 이를 받아들이며 이뤄진 방문이라고 합니다. 시장을 찾은 박정 당선자는 바닥에 떨어진 가물치를 들어올리며 “이렇게 집 나간 민심을 되찾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더민주의 한 당직자는 “예전에는 광주에 오면 고향집에서 온 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며 “이처럼 몸을 낮추고 눈치를 보며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 상황 벌어지는 것이 격세지감”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앞서 진행된 이날 워크숍에서도 더민주는 내내 한껏 몸을 낮췄습니다. 우 원내대표는 인사말에서 “우리는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로서 이곳 호남을 방문했다”며 “우리에게 호된 채찍질을 한 호남 민심 앞에서 잘못했다고 빌고 경청하고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하러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원내 1당으로 올라섰다는 자축이나 당선의 기쁨은 온데 간데 없이 민생국회 실천을 위한 토론, 수권경제정당 실현을 위한 토론 등 끊임없이 반성과 성찰의 시간만이 이어졌습니다.
더민주는 다가오는 17일 다시 광주를 찾아 5ㆍ18 기념식에 참석할 계획입니다. 같은 날 호남에서 녹색돌풍을 일으키며 더민주와 ‘야권의 적자’경쟁을 벌이는 국민의당도 5ㆍ18을 기념해 광주를 찾습니다. 더민주의 ‘역전’이냐 국민의당의 ‘굳히기’냐, 갈수록 격렬해지는 호남민심 쟁탈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요.
광주=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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