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오피스경제학
김윤지 지음
어크로스 발행ㆍ312쪽ㆍ1만5,000원
‘마성의 남자’라는 홍상수 감독에 대한 묘사는 아마도 그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크다. 대중성과 크게 상관이 없는 그의 작품에 정상급 배우들이 줄줄이 출연하니(심지어 노개런티로!) “대체 왜”라는 풀리지 않는 물음에 대한 나름의 그럴싸한 답이 ‘마성’인 것이다. 드라마 ‘봄날’(2005)로 화려하게 돌아온 고현정도 홍 감독의 ‘해변의 연인’(2006)을 차기작으로 선택했고, ‘패션의 아이콘’ 김민희도 벌써 세 번째 그와 작업 중이다. 그렇다, 이쯤 되면 매력이 아니라 마력이 있는 게 틀림없다.
신간 ‘박스오피스 경제학’은 설명할 수 없는 대중문화의 현상을 경제학으로 명쾌하게 분석한다. 예컨대 대중의 인기로 먹고 살면서 굳이 대중 취향과 거리가 먼 작품을 고르는 배우들의 비합리적 행위는 경제학의 ‘값비싼 신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매우 비싼 값을 치러서라도 자신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선택을 한다는 이 이론은, 그러니까 배우들이 당장 흥행작을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뭔가를 얻을 수 있으니 홍상수 감독을 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배우들이 “홍상수 감독 영화에 출연하면 ‘연기 좀 하는 배우’ 혹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는 배우’ 등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평론가로부터 진정한 연기력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들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 설명한다. 상업성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할리우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17세 미만 청소년 층을 과감히 포기하는 영화가 전체 제작 영화의 과반을 넘는 이유는 배우들이 “스필버그 영화에 엄마 아빠로 출연하는 것보다 타란티노 영화에서 살인마나 팜므파탈이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눈에 문화산업은 지나칠 정도로 감과 운에만 의존해와 “도박판과 다르지 않”고 “사이비 교주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었다. 제멋대로 해석도 많았다. 오락 영화가 뜰 땐 ‘불황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줬기 때문’이라고, 진지한 영화가 뜰 땐 ‘불황기 대중의 마음을 잘 포착했기 때문’이라고 아무렇게나 설명해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감’으로 흥행 여부를 점치고 ‘운’에 성공과 실패를 맡겨 버리기엔 문화산업의 덩치가 너무나 커져 버렸다. 그 동안 문화산업은 숫자에 익숙하지 않은 종사자들과 굳이 달려들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방치된 상태로 존재했지만, 저자는 이제는 이 간극을 데이터와 논리로 메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제학이란 단어에 “너무 많은 권위가 씌워졌다”는 저자는 독자가 가요, 연예인 등 친근한 주제로 경제학을 접하며 경제학의 신화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래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올림픽 개막식에 나가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던 주인공 ‘덕선’을 소환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설명하고, ‘무한도전’에 나와 큰 인기를 끌었던 인디 가수 ‘혁오’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이끌어 낸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들의 이혼율이 급증하는 까닭을 묻고 왜 짧은 시나리오가 더 비싸게 팔리는지 물으며 독자를 솔깃하게 만드는 이 책에는 감과 운을 확률의 영역으로 끌고 오려는 경제학자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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