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유행했던 ‘분홍빛 물결’을 타고 일어선 남미의 좌파 정권이 지난해 말 아르헨티나에 이어 올해 브라질에서도 무너지면서 각국 정부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심판 절차가 시작되며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권한대행을 맡게 되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 좌파 성향 국가수반들은 탄핵심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테메르 부통령과 비슷한 우파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탄핵심판 지지 의사를 공개 천명했다.
중남미지역 방송 텔레수르TV에 따르면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날 호세프 탄핵 사태를 가리켜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고 각국 우파의 공세로 좌파 정권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사태를 우려했다. 그는 “지우마 호세프 정권에 대한 쿠데타는 결국 중남미 전체를 향한 쿠데타이자 대중 권력의 종결을 목표로 하는 쿠데타의 첫걸음”이라 말했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역시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의회ㆍ사법 쿠데타에 대한 당신과 브라질 민중의 분노를 공유한다”며 호세프 대통령을 위로했다. 이외에 에콰도르, 니카라과, 쿠바 정부가 호세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논평을 냈다. 역내 정부간기구인 남미국가연합(UNASUR)의 에르네스토 삼페르 사무총장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4년 대선으로 재선출된 호세프야말로 브라질의 정당한 지도자”라고 주장했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시장주의 우파 성향 마크리 대통령은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절차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해 다룬 국가들과 대조를 이뤘다. 그는 이날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의 헌법에 의한 절차를 존중하며 이 상황의 끝에 브라질 민주주의의 힘이 강화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테메르 부통령은 마크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자마자 강경 시장주의자로 서구 금융권의 지지를 얻고 있는 엔히크 메이렐레스 전 중앙은행 총재를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한편 테메르 부통령은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맡으며 브라질의 신뢰 회복과 통합을 촉구했지만 새로 임명한 각료 22명 전원을 백인 남성으로 구성하면서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AFP통신은 브라질 내각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85년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진 이래 처음이며, 브라질 여성단체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호메루 주카 기획개발장관은 “내각에는 여성이 없지만 각 부처 사무국 가운데 다수에 여성 지도자를 기용할 것”이라고 일축했지만 진보진영은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밀려난 반동으로 보수파의 반페미니즘과 인종주의 정서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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