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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떠나야 할 때… 모든 것이 미안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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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떠나야 할 때… 모든 것이 미안할 뿐”

입력
2016.05.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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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 취임 8개월 만에

‘정윤회 파문’ 구원투수로 등판

대화ㆍ포용 중시 ‘소통형’ 평가

본인이 직접 차 몰고 떠나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을 떠나며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을 떠나며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직자가 떠날 때는 이렇게 떠나는 것이지….”

15일 물러난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한 뒤, 회색 그랜저 차량을 직접 운전해 떠나면서 한 말이다. 말 그대로 ‘훌쩍’ 떠난 그의 얼굴엔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이 전 실장은 본보 통화에서 “후임자를 찾느라 때를 기다린 것이지, 내가 나가는 건 진작 결정된 일이었다”며 “지금이 내가 떠날 적기”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모든 게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4ㆍ13 총선 참패 직후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며 사의를 밝힌 터였다.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청와대가 흔들리던 지난 해 2월, 이 전 실장은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 현 정부에서 일본 대사를 거쳐 국정원장에 취임한 지 8개월 만이었다. 불통 논란으로 청와대가 집중 공격 받는 시점이었던 만큼 ‘소통 형 비서실장’의 등장은 큰 기대를 모았다.

이 전 실장은 정치가 대화와 포용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믿는 온건파 정치인이다. 화해와 용서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는 취임 직후 청와대 직원들에게 “직급과 상관 없이 건의하거나 비판할 게 있으면 언제든 내 방으로 와 달라. 내 방 문은 늘 열려 있다”고 했을 정도로 소통을 중시했다. 청와대 인사는 “이 전 실장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많이 듣고 수석ㆍ비서관들에게 권한을 나누어 주면서 스스로를 낮추었다”고 했다.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막후 조정을 통해 지난해 말 한일관계 회복의 물꼬를 튼 것도 이 전 실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한 비서실장’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해부터 이 전 실장의 사의설과 교체설이 여러 차례 나돈 것은 그의 청와대 내 입지가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인 이 전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타협하는 국정 운영’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들이 흘러 나왔다. 특히 총선 이후 이 전 실장이 측근들에게 무력감을 토로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일부 수석이 이 전 실장을 노골적으로 견제했다는 설도 있었다. 이 전 실장과 가까운 사이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이 청와대ㆍ친박계 강경파와 충돌한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엔 이 전 실장의 리더십이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제가 아는 한 그는 과묵하고 합리적인 분”이라며 “그런 그도 세간에서 염려하던 그 (소통의) 벽을 넘지 못하고 퇴임한다”고 적었다.

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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