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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진 근대의 기억...길 위에 새겨진 종교 문화유산

입력
2016.05.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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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 무렵이면 전국의 사찰과 거리는 연등으로 화려한 장식을 한다. 흔히 부산은 불교의 기운이 강한 곳이라 하지만, 사실은 종교의 다양성이 살아있는 도시다. 실제로 불교에 비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나 천주교 등 다른 종교들도 상대적으로 만만찮은 교세를 자랑한다. 특히 중구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대청동 일대를 ‘종교의 거리’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대청로를 중심으로 성공회 부산교구청, 원불교 부산교구청, 천주교 주교좌중앙성당, 정교회 성모희보성당을 비롯해 사찰과 교회까지 다양한 종교시설이 집결해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디딘 선교사들. 광복로 입구 쌈지공원.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디딘 선교사들. 광복로 입구 쌈지공원.
부산 최초의 일본 사찰이었던 대각사
부산 최초의 일본 사찰이었던 대각사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제1호 부산주교좌 성당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제1호 부산주교좌 성당
부산 유일의 정교회 소속 성모희보성당
부산 유일의 정교회 소속 성모희보성당

1876년 개항 뒤 부산은 서구 문명을 도입함으로써 개화와 근대화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때 기독교, 성공회 등 다양한 종교도 전파됐다. 새로운 종교는 격동기 부산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갔고 종교건축에는 근대역사가 오롯이 새겨졌다.

도시철도 남포역 7번 출구로 나와 바로 왼쪽으로 꺾여 들어가면 쌈지공원이 있다. 공원 기념비에는 ‘기독교 선교사 이곳에 첫발을 딛다’란 표제와 함께 낯익은 3명의 외국인 얼굴이 새겨져 있다. 한국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앨런,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다.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조선을 찾아올 때 부산항이 첫 기착지였기 때문에 세워진 것이다.

여기서 광복로를 따라 ‘대청로’로 향하다 보면 신청동에 위치한 ‘대각사’를 만난다. 1894년 일본 ‘동본원사’ 부산별원으로 창건됐다. 부산에 세워진 최초의 일본 사찰이지만 수 차례 신축을 거쳐 동본원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한국식 절로 변모했다.

1948년 부산에서 3번째로 설립된 ‘중앙성당’은 서울의 명동성당처럼 1970년대 말부터 부산지역 민주화 항쟁의 보루였다. 현 성당 건물은 1973년에 새로 지어졌다. 중앙성당 터는 원래 일본 불교 정토종파 ‘지은사(智恩寺)’였다. 해방 후 일본인이 떠난 이 사찰을 서로 차지하려는 다툼이 일자 경남 관리재무국이 포교용으로 천주교에 불하했다. 중앙성당은 또 한국신용협조합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960년 수녀원 ‘나자렛의 집’에서 ‘성가신용협동조합’이라는 한국 최초의 신협을 창립한 것이다.

광일초등학교 인근에 1924년 지어진 ‘부산주교좌성당’은 부산시와 경상남북도를 담당하는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17개 성당 가운데 1호 성당이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립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부산에 성공회 교회가 설립된 것은 1903년. 변변한 성당 없이 일반 가정집에서 예배를 올렸는데, 캐나마 출신 선교사 카트라이트(Stephen H. Cartwright)가 한국에서 풍토병으로 숨진 후 나온 사망보험금으로 성당을 짓게 됐다. 건물면적이 300㎡ 조금 넘는 소형 예배당이지만 오른쪽 회랑 부분을 제외하고는 1900년대 초반 당시 목재 골조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건축학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종탑과 다락방까지 차지할 정도로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건물이다.

대청동 ‘성모희보성당’은 부산 지역 유일의 정교회 소속 성당이다. 정교회는 영어로 Orthodox Church, ‘초대 교회의 신조를 지키는 교회’라는 뜻이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1054년에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분열되어 ‘서방교회’는 로마를, ‘동방교회’는 예루살렘·안티오키아·알렉산드리아·콘스탄티노플 등을 배경으로 삼았다. 서방교회는 로마 가톨릭, 동방교회는 정교회라 불린다. 1980년 부산에 처음 소개된 정교회는 1982년 지금의 자리에 교회 부지를 매입, 1986년에 축성식을 가졌다. 현 건물은 2000년 2월 말에 완공된 것으로 모두 4층이고 비잔틴 양식으로 아름답게 건축되었다.

홍성권 작가ㆍ부산관광공사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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