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 박근혜 캠프서 태동
MB정부선 친이계에 밀려나 설움
朴 당선 후 당권 장악하지만
靑 거수기 노릇… 김무성 등 돌아서
진박 공천 무리수 두다 총선 패배
정진석 비대위ㆍ혁신위 무산시켜
“비민주적 행태” 비난 자초
친박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 및 혁신위원회 인선을 무산시킨 것으로 지목되면서 친박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당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친박계는 2007년 대선 때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캠프와 맞섰던 박근혜 후보 캠프 참여자들에서 유래했다. 당시 캠프에서 김무성 전 대표는 선거대책부위원장 겸 조직총괄본부장, 최경환 의원은 종합상황실장, 유승민 의원은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이었다. 하지만 경선에서 패배한 친박계는 이명박 정부에서 ‘현역의원 40% 물갈이’를 언급하면서 공천 칼날을 휘두른 친이계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반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대거 낙천한 친박계는 친박연대를 만들어 무소속 당선된 후 복당했지만 18대 국회에서 다수파인 친이계를 당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때 비주류로서 겪었던 소외와 고난이 거꾸로 친박계 내부결속의 원천이 됐다는 해석도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승리한 이후 친박계는 당내 최대 계파가 됐다.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친박계인 황우여 의원이 당 대표를 맡은 데 이어 이완구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맡았다. 또 이한구, 최경환 의원 등이 원내지도부도 장악했다.
친박계가 내부에서 반기를 든 인사들에 대해서는 당을 떠나게 만들 정도로 패권주의적 대응을 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친박계가 공격한 인사들은 대부분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진영 의원처럼 원래 친박 진영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다. 이처럼 친박계의 특징은 같은 진영에 있던 사람이라도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가지면 함께 갈 수 없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확고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3년여간 친박계는 집권 여당을 책임지는 주류 세력이면서도 대통령에게 쓴소리 한마디 못하고 대통령 뜻에만 따르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친박계가 이념이나 정책 성향, 출신 등으로 형성된 게 아니라 제왕적인 ‘1인 오너’를 따르느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형성돼 있어 합리적인 의사 결정에 취약하다는 진단도 나왔다.
친박계가 4ㆍ13 총선에서 유례없는 공천 보복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심판’을 얘기하자 유승민 의원과 친유승민계로 불리는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탈당의 길을 밟아야 했다. 총선 참패는 이처럼 친박계가 앞장 서 집안싸움만 벌이다 국민에게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친박계가 진지한 반성은커녕 당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적으로 돌린 유승민 의원의 복당을 필사적으로 막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20대 총선 결과 122석을 얻은 새누리당의 계파를 분석하면 친박계와 비박계가 6 대 4 정도 분포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 관계자는 “아직은 당의 주류가 친박계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서는 친박계가 당권을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며 “그러나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당의 의결기구인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까지 무산시키는 비민주적 방식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