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제69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박찬욱(53)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아쉽게도 수상에 실패했다. 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80)의 ‘나, 대니얼 블레이크’에 돌아갔다.
칸영화제는 22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경쟁부문 시상식을 열고 로치 감독의 ‘나, 대니얼 블레이크’가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노동자들이나 사회 빈곤층의 험난한 삶을 그려 오며 ‘블루 칼라의 시인’이란 별명을 지닌 로치 감독은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후 10년 만에 두 번째 칸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하게 됐다.
‘나, 대니얼 블레이크’는 의사의 권유로 일을 그만 둔 뒤 실업급여를 신청했다가 구직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한 영국 중년 노동자의 고난을 그린다. 가난한 자에게는 인색하고 융통성 없는 관료제의 문제점을 파고 드는 작품으로 영화제 기간 중 호평을 받았다. 로치 감독은 2014년 ‘지미스홀’ 발표 이후 은퇴설이 나돌았으나 이 영화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건재를 과시했고,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는 뚝심을 발휘했다. 로치 감독은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만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하다”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이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 캐나다의 28세 감독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이 차지했고, 삼등상인 심사위원상은 영국 여자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아메리칸 하니’에 돌아갔다. 감독상은 루마니아의 크리스티안 문쥬(‘그레듀에이션’) 감독과 프랑스의 올리비야 아사야스(‘퍼스널 쇼퍼’) 감독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최우수여자배우상은 브릴얀테 멘도사 감독의 ‘마 로사’에서 마약을 파는 여인을 연기한 필리핀 배우 해클린 호세가 차지했다. 최우수남자배우상은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이란 영화 ‘세일즈 맨’에서 아내를 때렸다가 곤경에 처하는 중년 남성 역할을 맡은 샤하브 호세이니에게 돌아갔다. ‘세일즈 맨’은 각본상도 받아 2관왕에 올랐다. 영화제에 초청 받은 신인 감독을 대상으로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은 프랑스 감독 우다 베냐미아(‘신의’)가 차지했다.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거론됐던 독일 여성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르트만’과 미국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은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아가씨’의 수상 불발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박 감독은 2004년 ‘올드보이’와 2009년 ‘박쥐’로 각각 심사위원대상과 심사위원상을 거머쥔 경험이 있어 한국 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기대하는 영화인이 적지 않았다. 박 감독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일찌감치 알려져 수상 불발이 어느 정도 예견됐다. ‘아가씨’는 내달 1일 국내 개봉한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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