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친박계는 20대 총선 이후 당내 최대 계파가 됐다. 전체 당선자 122명 중 절반(54.1%)을 웃도는 66명 가량이 친박계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계파 지형은 19대 국회에서 친박ㆍ비박계로 단순화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계파분화가 이뤄지면서 다소 복잡해졌다.
새누리당 내 계파 지형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기원은 지난 2005년 1월 진행된 당직 인선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상도동계 출신의 김무성 의원을 사무총장에 이회창 전 총리가 정치권으로 이끈 유승민 의원을 당 대표 비서실장에 각각 임명했다. 지금은 박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는 비박계 ‘투 톱’ 김무성ㆍ유승민 의원이 ‘원조 친박’으로 불리는 이유다.
대선을 겨냥한 외연 확장에 성공하면서 친박근혜(친박)계는 주요 계파로 부상했고, 여권 내 세력지형은 친박계와 반박계로 재편됐다. 반박계 중심에는 대권을 놓고 경쟁하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을 지원하는 이재오ㆍ정두언 의원 등 친이명박(친이)계가 자리했다. 친박계는 승리를 자신했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고, 2008년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등 시련을 겪는다.
친박계가 ‘배신의 정치 심판’을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에 가담한 전여옥 전 의원이 첫 타깃이 됐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과정에서는 친이계에 동조해 박 대통령에 맞섰던 김무성 의원이 사실상 파문 당했고, 친박계가 주도한 19대 총선 공천에서도 탈락한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유승민 의원이 대선 승리를 목표로 ‘친박계 2선 후퇴’를 주장하다 내쳐진다.
이후 친박계의 핵심은 최경환 의원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친최경환그룹이 친박계 내 최대 분파로 성장했다. 물론 친박계 분화 또한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유기준ㆍ홍문종ㆍ이정현 의원 등은 20대 총선 이후 독자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력 차기 당권주자인 이주영 의원 등은 범친박계, 원유철 의원 등은 신박계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
비박계는 20대 당선자의 31.9%(39명) 가량으로 친박계에 비해 수적 열세에 놓여 있다. 뚜렷한 구심점이 없다는 평가지만, 김무성계 만큼은 강한 결집력을 보이고 있다. 옛 친이계는 유력 당권 주자인 정병국 의원과 3선 중진 고지에 오른 김용태ㆍ김영우ㆍ황영철 의원 등 소장ㆍ개혁 성향의 중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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