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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이번에도 단골 손님 밀어주기

입력
2016.05.2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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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회 칸영화제가 12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22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칸영화제 폐막식은 노장 예우와 칸 출신 우대라는 칸의 보수적인 전통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경쟁부문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아무 상도 받지 못한 건 아쉽지만, 한국영화의 위상을 새삼 확인한 영화제였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만하다.

22일(현지시간) 제69회 칸 영화제 폐막식에서 ‘단지, 세상 끝에서’의 자비에 돌란 감독(가운데)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뒤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제69회 칸 영화제 폐막식에서 ‘단지, 세상 끝에서’의 자비에 돌란 감독(가운데)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뒤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여전히 보수적인 칸의 흐름

기적 같은 건 없었다. 최고 영예의 황금종려상은 13번이나 칸영화제 경쟁부문 무대를 밟은 노장 감독 켄 로치(80)의 ‘나, 대니얼 블레이크’에 돌아갔다. 지난 2006년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이어 로치 감독은 황금종려상 2회 수상 반열에 올랐다.

올해 수상 결과는 칸의 보수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로치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캐나다의 자비에 돌란(‘단지, 세상의 끝’), 감독상을 공동수상한 루마니아의 크리스티안 문쥬(‘바칼로레아’)와 프랑스의 올리비에 아사야스(‘퍼스널 쇼퍼’), 심사위원상을 받은 영국의 안드리아 아놀드(‘아메리칸 허니’) 등은 모두 칸과 인연이 깊다. 칸이 발굴하고 칸이 키운 영화 인재다.

특히 혹평을 받은 ‘단지, 세상의 끝’과 ‘퍼스널 쇼퍼’가 수상한 것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식 시상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불과 28세인 돌란 감독은 칸이 공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젊은 인재로 유명하다. 20세에 만든 장편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가 칸에 초청된 뒤 줄곧 칸의 초대장을 받았고, ‘마미’(2014)는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지난해 27세의 나이로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며 화려한 이력을 이어갔다. ‘단지, 세상의 끝’은 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이 영화제 기간 매일 발행한 특별판에서 4점 만점에 평점 1.4점, 프랑스 영화전문지 르 필름 프랑세즈로부터는 2.1점을 각각 받는 등 혹평이 잇따랐으나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챙겼다. 시상식에서 돌란의 이름이 울려 퍼지자 프레스센터에는 야유가 가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칸의 단골 손님인 아사야스 감독도 2014년 경쟁부문에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초청됐고, 지난해에는 돌란 감독과 함께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퍼스널 쇼퍼’는 언론 시사회에서 비웃음과 야유가 쏟아졌는데도 감독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영화 ‘퍼스널 쇼퍼’로 감독상을 수상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칸=AFP 연합뉴스
영화 ‘퍼스널 쇼퍼’로 감독상을 수상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칸=AFP 연합뉴스

감독상을 공동수상한 문쥬 감독도 2007년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황금종려상 수상 경력이 있고, 아놀드 감독은 ‘피쉬 탱크’와 ‘레드 로드’에 이어 연달아 세 번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칸의 레드카펫을 한 번이라도 밟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겠다는 무언의 메시지로 해석될 만하다.

영화제 내내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거론됐던 독일 여성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르트만’은 수상하지 못해 칸의 폐쇄성을 뚜렷이 보여줬다. ‘토니 에르트만’은 스크린 인터내셔널로부터 3.7점이라는 역대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아 화제가 됐다. 일 중독에 빠진 딸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장한 아버지를 그려낸 이 블랙 코미디는 언론시사회와 공식 상영회에서 큰 환호를 받았다.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감독에 이어 23년 만에 여성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올 만한 후한 평가였다.

마렌 아데 감독의‘토니 에르트만’은 영화제 내내 유력한 황금종려상으로 거론됐지만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마렌 아데 감독의‘토니 에르트만’은 영화제 내내 유력한 황금종려상으로 거론됐지만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처음으로 경쟁부문에 입성한 아데 감독은 결국 빈 손으로 고국인 독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영화 위상 새삼 확인

박찬욱 감독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귀빈 대접을 받았다. 경쟁부문에 오른 영화 ‘아가씨’는 14일(현지시간) 칸영화제에서 두 번째로 큰 드뷔시 극장뿐만 아니라 가장 큰 규모의 뤼미에르 극장에서도 언론 시사회를 열었다. 지난 2009년 제62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박 감독의 ‘박쥐’가 드뷔시 극장에서만 언론 시사회를 열었던 것과 대조된다. 칸영화제가 박 감독의 지명도에 맞게 뤼미에르 극장을 내 준 것으로 분석된다.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아가씨’ 언론 시사회는 2층까지 관객들이 꽉 차면서 박 감독에 대한 해외 언론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수상이 불발돼 아쉬움을 남겼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수상이 불발돼 아쉬움을 남겼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가씨’가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칸에서 한국영화를 갈채를 이끌어냈다. 비경쟁부문에 나홍진 감독의 ‘곡성’, 미드나잇스크리닝 부문에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상영돼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박영주 감독의 단편 ‘1킬로그램’과 윤재호 감독의 단편 ‘히치 하이커’각 시네판다시옹과 감독주간에 각각 초청돼 한국영화의 미래를 보여준 점도 의미 있다.

하지만 박 감독과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임상수 감독 등 50대를 제외하곤 신예 감독이 오래도록 경쟁부문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어 우려도 나온다. 한국영화계는 지난해 4년 연속 한국영화 관객 1억명 달성, 3년 연속 영화 관객 2억명 돌파, 1,000만 영화 3편 배출 등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룩하고 있으나 지나친 상업주의 때문에 예술성을 갖춘 신진들이 등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중견 감독은 “감독의 색채가 진한 작가주의 성향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사라진 지 오래”라며 “대중성을 앞세워 흥행이 보장된 상업영화만 많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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