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질적 막말, 네 탓 공방
상임위ㆍ본회의장 삿대질은 예사
국정감사 피감기관에 갑질 반복
대통령ㆍ국민에까지 부적절 발언
개원 초 일하는 국회 다짐했지만
흠집내기식 정쟁으로 4년 허송
윤리위 막말 징계 의결도 ‘0건’
▲정청래 민주당 의원= 막말대마왕은 이장우 의원이야.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 왜 반말이야.
▲정 의원= 당신도 반말 하는구먼.
▲이 의원= 이런 회의장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민주당 의원들 떼거지로 와 가지고(중략).
▲정 의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말이야.
2013년 8월 19일 열린 국정원댓글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록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이처럼 19대 국회에서는 국회선진화법으로 몸싸움이 사라진 자리에 ‘막말’과 ‘네 탓 공방’이 비집고 들어왔다. 개원 초 일하는 국회를 다짐했던 의원들은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동료의원과 관계자들을 향한 막말과 삿대질, 정쟁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3당체제 20대 국회에서의 ‘협치’를 위해선 고질적인 막말과 네 탓 공방부터 멈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2012년 5월부터 올해 1월 15일까지 국회회의록검색시스템과 주요 일간지, 방송 및 통신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한 차례 이상 부적절한 발언(막말)으로 논란이 됐던 의원은 총 73명으로 전체의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 중 동료의원에 대한 막말이 36회(29.5%)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전ㆍ현직 대통령, 국무위원 혹은 공직자 순이었다. 상임위나 본회의장에서 동료의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반말을 하는 것은 예사였다. 2014년 4월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이던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향해 “너나 잘해”라고 외치고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도 “철수해요, 철수”라고 거드는 상식 밖의 추태를 보였다.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이자 의정활동의 ‘꽃’인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 역시 막말과 네 탓 공방으로 빛이 바랬다. 특히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댓글 의혹 사건,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 등 정쟁 이슈로 여야가 입씨름만 반복하다 빈 손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정쟁 앞에서는 동료 의원들 간에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여야가 국무위원이나 피감기관을 향해 ‘송곳’ 질의를 하기보다는 흠집내기식 정쟁에 몰두한 점도 스스로의 책무를 스스로 내던진 장면들이다. 때문에 ‘정쟁국감’이나 ‘호통ㆍ막말국감’은 익숙한 단어가 됐고 급기야는 ‘대정부질문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국회에서 이 같은 막말과 네 탓 공방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갑의 위치에 있는 의원들의 권위주의적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은 2013년 6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 중 당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향해 “어디서 싱글싱글 웃냐”고 다그쳤고 홍종학 당시 민주당 의원은 2014년 10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정해방 금융통화위원에게 “금통위원의 기억력이 저 정도밖에 안 되냐, 한글 모르시냐”고 몰아세웠다.
상임위나 국감, 청문회 등에서 한 의원에게 주어진 질의시간이 단 7분에 불과하다는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된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의원이 되면 국회에 나오신 분들에게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 예, 아니오만 대답하라’는 식으로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며 “그런데 현실적으로 시간이 없으니 그게 안 되더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일부 초선 의원이나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 막말을 존재감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에게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주목을 끄는 것은 인지도를 높이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미 자리잡았다”고 꼬집었다.
19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4년여 동안 처리한 ‘막말로 인한 징계안 의결’ 건수가 단 0건이라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각종 비리와 막말, 품위 위반 등으로 윤리특위에 제출된 징계안은 총 39건이나 됐지만 성폭행 혐의를 받은 심학봉 전 의원의 징계안 단 1건만 처리됐다. 이 중 막말로 인한 징계안은 16건으로 전체의 41%를 차지했으나 동료의원으로 구성된 윤리특위의 제 식구 감싸기에 묻혔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학과 교수는 “3당 체제인 국회에서는 배려하고 신경 써야 하는 상대가 19대 국회에서보다 더 늘어난 것”이라며 “공들인 회의나 협상이 막말로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언어의 품격에도 신경을 쓰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전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