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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한강 "노벨문학상 욕심? 글만 쓰라고 격려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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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한강 "노벨문학상 욕심? 글만 쓰라고 격려해주길…"

입력
2016.05.2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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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씨가 24일 기자간담회를 가졌습니다. 19일 조용히 귀국해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는 이날 수상 후 처음으로 국내 언론과 만나 그간의 감회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밝혔습니다. 기자간담회 전문을 소개합니다. 기사 중간에 한국일보 페이스북 공식계정에서 실시한 라이브 영상도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작가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신작 소설 '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작가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신작 소설 '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자: 맨부커 이후 첫 기자회견이라 혼선이 있었습니다. 한국사회가 처음 겪는 일이라 혼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학상에 대한 매뉴얼, 앞으로 작가들이 문학상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될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한강: 앉아서 얘기해도 되죠? 제가 목소리가 작아서…. 이렇게 많이 찍으시면 제 목소리가 안 들리지 않을까요? 죄송합니다. 이 간담회는 원래 예정돼 있던 행사였어요. 연초부터 기획했던 행사구요. ‘흰’이라는 신작을 가지고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김민정 시인이자 난다 대표님이 오신 분들께 흰떡을 나눠드리자고 얘기했었어요. 그래서 소박하고 조용한 행사가 될 거라고 짐작했었는데, 짐작과 달리 굉장히 압도적인 자리가 되었네요.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구요.

영국에 갈 땐 굉장히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어요. ‘흰’이 영국에서 가을에 출간되거든요. 편집자와 이메일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다 보면 며칠씩 걸려서 잠깐 만나 많은 애기를 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영국에 갔구요. 수상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갔었어요. 근데 상을 받고 나서 여러분이 많이 기뻐해주시고, 고맙다고 하는 분들도 계셔서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헤아려 보려고 했던 지난 일주일이었습니다.

일단 상을 받은 소설은 ‘채식주의자’란 소설인데요 그 소설을 완성한 게 벌써 11년 전이에요. 출간된 건 9년 전이구요. 저로선 그 소설에서 많이 걸어 나왔죠. 그 뒤로 다른 장편소설을 계속 썼구요. ‘채식주의자’란 소설은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껴안을 수 있는가란 질문으로 끝나는 소설인데요. 그 다음 소설이 ‘바람이 분다’에서는 거기서 시작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게 과연 가능한가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그 소설의 끝에선 한 여자가 불 속을 배로 기어서 빠져 나오는 모습이 나와요. 그 장면을 통해서 제가 살아야 한다는 대답을 애쓰며 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다음이 ‘희랍어 시간’인데요, 그럼 우린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며 그게(사는 게) 가능할까 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구요. 인간의 연하고 섬세한 자리, 그 자리를 들여다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이 ‘소년이 온다’입니다. 그 소설에선 압도적인 폭력의 상황에서 조명을 향해 나아가는, 그 사람들의 모습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그걸 써가는 과정에서 제 질문들이 변화하는 걸 느꼈어요. 소설이 출간된 직후에는 인간의 밝고 존엄한 지점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에 나온 책이 ‘흰’입니다. 제가 2013년 가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레지던스에 머물렀었는데요, 1944년에 90몇 퍼센트가 폭격으로 파괴되고 재건된 도시에 머물면서 그 도시를 닮은 사람을 상상했고, 그 사람에게 삶의 어떤 부분을 주고 싶다면 그건 아마 흰 것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투명한 생명, 빛, 밝음, 눈부신 것들. 그것들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쓰고 나서 다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산문 같기도 시 같기도 한 조금은 이상한 책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고 또 많이 다듬었어요. 다듬는 과정에서 전시기획자인 김영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글 쓰는 사람과 시각예술가의 협업을 기획해보고 싶다고 해서, 난 그런 것 못할 것 같은 데라고 생각했지만, 차미혜 라는 작가를 만나면서….

책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텍스트와 이미지가 대화하듯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그 사진을 찍으신 분이 차미혜 작가님이십니다. 그것과 독립적으로 전시도 하게 되었어요. 6월에 성북동 스페이스오뉴월이란 곳에서 운영하는 작은 한옥 갤러리가 있어요, 여기서 2인전의 형태로 차 작가님이 영상을 설치하시고, 제가 어떤 행위를 하고, 그걸 필름에 담아서 전시하는 그런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언어 아닌 다른 것으로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어서 의미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차미혜 작가님 사진 봤을 때 그 서늘함에 많이 놀랐어요. 전시 제목이 소실점인데, 뭔가 소실됐는데 점이 있는 거잖아요. 이걸 전시 제목으로 정하게 되었구요. ‘흰’이란 단어 자체가 삶과 죽음 사이, 배내옷부터 수의까지, 흰 것들 안에는 삶과 죽음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것과 이분의 작품이 잘 어울려서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시에서 저는 영상을 4개 만들었구요. 아기 때 세상을 떠난 그 분에게 옷을 만들어 드리는, 아주 개인적인 영상입니다. 그 밖에도 돌과 소금, 얼음이 손 위에서 녹는 장면, 깃털로 제가 쓴 글 위를 덮어서 볼 수 없게 만드는 그런 퍼포먼스, 실이 운명이잖아요, 실을 끼우고 걸어가는. 이 책을 만들면서 많은 걸 배웠는데요, 다들 너무나 열의를 가지고 책과 전시를 준비하셨어요. 제가 영국으로 가게 되는 바람에 (출간)일정이 촉박했었어요. 모두가 새벽 2, 3시에 깨어 있을 때도 있었어요. 저와 김민정 대표, 모두가 새벽에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우린 무슨 영화를 바라며 잠도 안 자고 뭔가를 하고 있는 걸까, 뭔가를 좋게 만들려고 이러는 걸까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저에게 매우 귀했습니다. 이 책으로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 질의응답 시간

-아버님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쓰신 한승원 작가님이시지요. ‘흰’에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뤘는데 작가에게 불교적 세계관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현재로서 종교를 특별히 갖고 있진 않은데요, 20대엔 불교에 푹 빠져 있었달까요. 지금은 제가 종교를 갖고 있다고 감히 말하긴 어려운데, 종교와 종교적인 건 좀 다른 거니까요. 종교적인 생각은 늘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근본적인 질문들을 갖고 씨름한다는 점에서,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종교적 지점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구요. 저에게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 부처님오신날이에요. 어릴 때 연등회 보고 이렇게 아름다운 게 이 세상에 있나? 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 납니다. 이렇듯 불교는 저에게 각별한 지점이 있습니다.”

-작품을 쓸 때 외국어로 번역될 걸 염두에 두고 쓰나요?

“(웃으며)아니오.”

-번역을 한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할 때 작가와 서로 상의를 했나요? 아니면 결과물을 보고 감수를 했나요?

“지금까지 ‘채식주의자’가 여러 언어로 번역이 됐어요. 그 동안 제가 생각한 게 그 책이 내 책이긴 한데 제가 읽을 수 없는 책이었어요. 번역자와 편집자를 무작정 신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영어로 번역된다고 하니까 반갑더라구요. 제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니까요. 데보라씨가 처음 번역본을 보내줬을 때 굉장히 반가웠어요. 여러 질문들을 곁들여 메일을 보냈고 나는 거기에 답하는 식으로 여러 번 메일이 왔다 갔다 했어요. ‘소년이 온다’ 때는 사회 역사적 맥락, 한국의 특수한 정서 같은 것에 대해 (그 분이)알기 어렵기 때문에, 한 줄을 설명하기 위해 한 페이지 분량으로 역사적 상황을 써야 했던 때도 있었어요.”

-국내에 훌륭한 작가들이 많은데, 한국 문학의 발전 가능성 혹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저는 한국 문학 속에서 글자 그대로 자라난 사람이구요. 계속해서 한국 작가들이 쓴 작품을 읽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 문학에 큰 애정과 빚이 있습니다. 한국 문학이 많이 읽혀질 수 있고 그러길 바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이 화제가 되지도 않을 만큼 이런 일들이 앞으로 많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구요.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해요. 좋은 번역자들 많이 나타났고 외국 편집자들도 한국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식주의자’는 일본에서는 2011년에 번역 출간됐습니다. 번역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번역자가 아주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구요. 근데 제가 일본어를 못해요. 훌륭하게 번역하셨을 거라고 믿고. 일본에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면 느낄 수 있는데, 훌륭한 번역자라고 생각해요.”

-‘흰’은 어떤 내용인가요?

“‘흰’은 ‘소년이 온다’에 이어지는 소설이에요. ‘소년이 온다’에 이어지는 소설이 또 하나 있는데 지금 작업하는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입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새로운 장편 혼 3부작의 첫 번째예요. 사회적 맥락 안에서 윤리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강 작가 글을 읽다 보면 시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수묵화에서 문학적 표현들이 나왔다. 미술, 회화가 글쓰기에서 어떤 영감을 주는지. 음성이 좋은데 앨범 작업을 할 계획이 있는지요?

“앨범 작업 많이 안 했어요. 하나 했구요. 조금 민망한데…. 미술 작업은 미술이 저에겐 중요해요. 왜 그런지 저도 생각을 해봤는데 어릴 때 같이 살던 막내 고모가 미대를 다니셨고 저한테 늘 모델을 서게 하셨어요. 그 방엔 늘 그림이 가득했어요. 그렇게 친근함을 갖고 성장했구요. 미술 작업을 볼 때 제가 갖게 되는 어떤 상태가 있는데 그 안에 머물러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술이 제 작품 안으로 스며 들어오는 느낌으로 소설을 써온 것 같아요.”

-영문판 번역을 처음 읽게 됐다고 했는데, 어떤 느낌이었나요? 번역자들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는데 옳다 그르다기 보다는 영문판에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요?

“채식주의자의 경우 번역본을 받았을 때 ‘소년이 온다’를 쓰고 있던 시점이었어요. 쓰고 있던 소설이 더 중요하니까 그 톤이 잘 가고 있는지를 주로 봤어요. 저는 소설에서 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목소리를 담는 것. 데보라씨의 번역도 톤을 가장 중시하는 번역이에요.

제가 놀랐던 것은 1장에 보면 영혜가 말을 하는 대목이 있는데, 악몽을 이탤릭체로 독백하는, 그 부분의 느낌을 제 감정, 그 톤 그대로 번역하셨다고 느꼈어요.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습니다. 굉장히 신뢰를 갖게 되었구요. 저는 번역이란 게 원작에 충실하다는 기준은 감정과 톤의 전달에 있다고 생각해요. ‘소년이 온다’는 역사적 맥락을 그대로 옮기면 외국 기자들이 모르기 때문에 장 제목을 바꾼다든지, 우리는 광주민주화 항쟁에 대해 어디까지가 소문인지 진실인지 알지만, 그들은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편집자와 함께 상의해서 본문을 세 부분 정도 바꿨습니다.”

사회자: 해외 판권 담당하는 이구용 대표 모시고 잠깐 질문 받겠습니다.

이구용: 네 반갑습니다. 간략하게 말씀 드리면, 채식주의자는 현재 27개국과 계약이 됐구요. 현재 라트비아, 인도 남부 지역 소수언어로 내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관심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에서는 내년에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함께 출간하겠다고 나에게 미리 얘기를 해왔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번을 계기로 지금까지 출간되지 않은 다른 모든 장편을 내겠다는 의사를 보내왔고요. ‘바람이 분다’ ‘희랍어 시간’ ‘그대의 차가운 손’ 신작 ‘흰’도 다 포함돼 있어요.

‘소년이 온다’는 사실 현지 정서상 약간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다시 적극적인 진행의사를 밝혀왔구요. ‘소년이 온다’는 현재 10개국에 팔렸고 여기에 중국을 더해 11개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관심이 ‘소년이 온다’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흰’이라는 작품에 대한 관심도 수개월 전부터 pdf판을 이미 해외 에이전트 들에게 전달한 상태고, 현재 영국 네덜란드에 판매했고 중국 진행 중입니다.

오늘 아침에 영국에서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현지 반응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수상 발표 난 그 날 2만 부 증쇄, 그게 1주간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오늘 추가 7쇄로 2만부 재쇄가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미국에서도 소식 전해왔는데 현재 하드커버로 나왔는데 좀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페이퍼백으로, 8월 23일 출간할 예정입니다.”

-번역 톤을 중시한다는 말씀이 직역보다는 의역이라는 판단인 것 같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세 군데 고치면서 원작이 바뀐 거잖아요. 훼손이라고 할 순 없지만 오리지낼러티에 대해 어떤 생각이신가요? 또 하나는 수상이 현재 굉장한 이슈인데 이런 큰 일인데, 압도적인 칭찬의 분위기를 느끼고 난 뒤 앞으로 어떻게 극복할지도 말씀해주세요.

“‘소년이 온다’ 번역에서 원작에 불충실한 부분은 전혀 없어요. 전체가 그대로 담겨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채식주의자는 다른 소설을 집필 중이었던 상황이라 1대 1 대조는 못해봤지만 원작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현지 독자들이 혼란에 빠질 수 있는 부분만, 작품의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미세하게 편집을 한 것입니다.

이 경험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이 자리가 끝나면 제가 쓰고 있던 작업 하고 싶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책을 통해서 할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제 방으로 돌아가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고 합니다.”

-번역의 중요성이 많이 부각됐는데 작가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그리고 맨부커상 수상 후 가장 달라진 점이 뭔가요?

“제가 작년에 영국 번역 워크숍에 일주일 간 참여했는데요 한 페이지의 분량을 일주일에 걸쳐 번역하는 작업을 했어요. 하나의 문장을 번역하는 열 개의 가능성을 살피는 식으로. 이게 과연 한 페이지라도 끝날까 싶었는데 결국 끝은 났어요. 그때 느낀 게 번역이란 건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구나. 그런 언어의 섬세함. 예민함. 그런 것에 저는 항상 매료가 됩니다. 앞으로 많은 한국 문학 작품들이 좋은 번역을 통해 계속 소개될 거라 믿고 있습니다.

변화는, 잘 모르겠어요. 오늘 지하철 타고 왔는데 아무 일도 생기기 거든요. 출판사 분들이 택시비도 주셨지만, 지하철 타도 아무 일도 없었고, 저는 그냥 예전처럼 살고 싶습니다.”

-맨부커상 받았을 때 현장 분위기 직접 얘기해주세요.

“저는 그때 시차 때문에 거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린 상태였어요. 별로 현실감 없는 상태로 상을 받았어요. 다행히 발표 나기 직전에 커피 한잔 마셔서 그래도 무사히 그 날을 마무리했었구요. 제 생각에는 내 마음이 단단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을 쓴지 오래돼서 그런 것 같아요. 벌써 11년 전이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건너서 이렇게 먼 곳에서 상을 받는 게, 좋은 의미로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 당시엔 기쁘다기 보다는 아 참 이상하다 이런 느낌이 더 컸습니다.”

-책이 많이 팔리고 있는데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언가요?

“이 소설은 조금은 불편할 수 있어요. 질문으로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11년 전 던졌던 질문에서 저는 계속 나가고 있고 지금도 계속 나가고 싶다는 말을 새롭게 읽으시는 독자 분들께 꼭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희망하는 점이 있다면 그 소설만 읽지 마시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선후배 작가들이 많거든요, 조용히 묵묵하게 글을 쓰시는 그 분들의 글을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맨부커상 수상할 즈음에 최영미 시인이 생계 힘들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활동 중 힘들었던 시기 있었는지요. 한국 작가들이 활동에 어떤 점들이 개선되면 좋겠는지요?

“저는 그렇게 책이 많이 팔리던 사람이 아니구요. 이 상황이 왠지 전 믿어지지도 않아요. 채식주의자가 수상 전에 2만 부 정도 나간 걸로 알고 있어요. 굉장히 많이 나갔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한 책이 2만부 팔리면 많이 팔린 거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신 분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왔어요.

사실 10년 동안 2만부라는 건 1년에 2,000명의 문학 독자가 계시다는 거잖아요. 그 분들 귀중한 분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문학작품을 보실 때 어려운 소설, 어려운 시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걸 대답이나 제안으로 받아 들이면,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란 반응이 나올 수 있지만, 모든 걸 질문으로 생각하면 더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그렇게 받아 들이면 이 세상에 어렵거나 지루한 문학 작품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조금만 마음을 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흰’에서 반복 등장하는 열 살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시소설이란 형식을 시도한 이유는요?

“열 살이라고 말씀하신 해가 79년이고, 제가 서울로 올라온 게 80년 1월이에요. 서울로 올라온 그 해 겨울이 굉장히 추웠어요. 이불을 다 덮고 잠들어도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웠는데요. 그때 인생은 이렇게 계속 추우려나보다란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게 춥기 전의 유년시절, 그 시기 그 공간에 대해서 많이 돌이켜 보게 되었고, 그 열 살이란 해는 저에게 유년을 압축해 놓은 것 같은 해가 되었어요. 그때 친구도 가장 많았던 것 같고요.

‘흰’의 형식에 대해 물어보셨는데요, 저는 이 작품을 가지고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썼어요. 흰 것에 대한 산문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허구의 인물이 들어오면서 점점 소설에 가까워지더라구요. 실험하고 싶은 생각 없이 썼는데 쓰다 보니 실험이 되는, 그런 특별한 경험을 했어요.”

-‘흰’이란 한 글자 제목을 쓰셨는데, 한국어 제목과 영어 제목(The elegy of whiteness)은 어떻게 그렇게 짓게 됐는지요?

“세상이 너무 퍽퍽해서 고통을 일부러 외면하려는 사람도 많은데 작품 안에 드러나는 고통들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는지, 고통이 작가에게 무엇인지

일단 ‘흰’이란 제목은, 흰도 있고 하얀도 있잖아요. 둘이 느낌이 많이 다르죠. 하얀은 솜사탕처럼 하얀데, 흰에는 삶과 죽음의 서늘함이 다 들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문 제목은 영국 편집자와 애기하다가 하얀과 흰의 차이를 말했더니, 그걸 표현하려면 이렇게 지어야 할 것 같다고 제안하셨어요. 이 영문 제목을 부제로 넣으면 한국 독자들에게도 명확하게 전달될 것 같아서 한국 책에도 달았습니다.

고통은, 저는 어릴 때부터 숙제가 이 세상 어딘가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들이 아주 생생하게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게 큰 숙제였어요. 우리가 그냥 편안하게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평화로워질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삶은 그렇게 작고 얇은 게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의 삶, 현재, 과거가 다 들어있기 때문에, 고통을 우리 삶의 일부로서 계속 같이 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맨부커상 받은 후에 노벨문학상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작가로서 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아주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구요. 수상 날 누군가 오늘만큼 기쁜 날 있냐고 물었는데, 당연히, 당연히(있었죠) 기쁨은 개인적인 것이잖아요. 저는 글을 쓸 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독자도 생각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내가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과 아마 완성할 수 있을 거야 같은 일말의 바람 사이에서 흔들리며 씁니다. 완성되면 어떻게 되긴 됐네 라는 느낌으로 끝이 나거든요. 그렇게 글 쓰는 입장에서 상이라든지, 그 다음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여력이 부족해요.”

-노벨상에 대해선?

“글 쓰는 사람한테는 그냥 글 쓰라고 하면 좋겠어요. 노벨상은 책이 완성된 후 아주 먼 미래에 나오는 결과잖아요.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마지막 작가의 말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많은 말들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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