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의 그림 대작 사건에 대해서 검찰이 적용하려는 형사 범죄다. 형법의 사기죄는 사람을 속여서 재물을 빼앗거나 재산상의 불법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속이는 행위와 속는 사람의 착오, 그리고 재물 및 재산상의 이익이 오가는 것 사이에 순차적인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착오에 빠진 원인 중에 속는 사람 쪽의 과실이 있는 경우에도 사기죄는 성립한다는 판례가 있다고 한다.
미술계 쪽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조수 등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작품을 대신 만들거나 그리게 하는 것이 현대 미술의 관행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도덕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개입해서 형사 범죄로 다루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것이다.
관행 운운하는 얘기는 조심스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설령 그것이 현대 미술의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전통 매체와 기법에 의한 작업이나 작품이 아직 큰 부분을 차지하는 미술계 전체로 보아서는 매우 제한된 것이며, 많은 작가들은 직접 만들거나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대작 행위는 미술품을 대량 내지는 다량으로 생산하거나 복제해서 팔 수 있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들에 국한된다.
대작 관행이 있다고 해서 조영남의 대작 행위가 정당화되거나 당연시되어서는 안 된다. 뇌물 수수가 관행이라고 해도 뇌물 수수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다양한 대작 행위에 대한 섬세한 분류와 평가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형사 범죄로 다루어 가려는 근거로서 검찰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일부 보도에 의하면, 1992년 미국의 저작권 판례인 듯하다. 이 판례에서 원고 J는 잡지사 R을 포함한 복수의 피고인들에 대해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J는 잡지사 R에 고용되어서 잡지의 표지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은 20세기 전반 미국의 화가 그랜트 우드의 유명한 그림 ‘아메리칸 고딕’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아메리칸 고딕’ 원래 그림에는 부부 내지는 부녀로 보이는 남녀 농부가 집을 배경을 서 있고 남자는 세 갈래 쇠스랑을 들고 있다. 잡지 표지 패러디 그림에서는 사람 얼굴 대신 해골이 그려졌고, 쇠스랑은 기타로 대체되어 있다. 원래 이 패러디 아이디어 자체는 피고의 한 사람인 K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잡지사 R은 이 표지 그림을 나중에 포스터 및 광고 등에서 다시 활용했는데, 이에 대해 J가 저작권 소송을 낸 것이다. 잡지사에 고용된 J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따라 그린 것이지만 판결은 J의 저작권을 인정해주었다.
그러니까 제품 생산에 빗대어 말한다면, 미국의 그 판례는 설령 생산 방식이 제조자 설계 생산(ODM)이 아니라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이라고 하더라도 저작권은 그림을 생산한 사람에게 있다고 하는 판결인 셈이다. OEM은 설계 및 개발 기획만은 주문자가 하고 ODM은 생산자가 그것들까지도 맡는 방식이다. 다른 사람이 그렸다면 그림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가 그 판례에 깔려 있다.
OEM이나 ODM이 성립하는 까닭은 주문자가 유통 및 판매에서 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번 경우 그 힘은 조영남의 명성이다. 조영남은 작품의 콘셉트 자체가 100% 자기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는데, 검찰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은 실제로 그린 사람에 있다는 민사 판례를 인용함으로써 형사 소송을 성립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만 제조업체 팍스콘이 생산한 아이폰을 애플사의 제품으로 알고 사서 쓰고 있다. 반면에, 순금이 아닌 것을 순금으로 속여 팔았다면 세상의 통념상 사기다. 검찰은 바로 그 세상의 통념에 의지해서 기소하려는 듯하다.
한자어 만들 작(作)과 속일 사(詐)의 차이는 사람(人)과 말(言)에 있다. 작(乍)은, 갑골문의 형태로는, 칼로 기물을 깎아서 무늬를 만들어 넣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창조 행위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뜻의 글자가 작(作)이고 말로 속인다는 뜻의 글자가 사(詐)다. 백남준은 일찍이 “(현대)미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벌어질 재판이 흥미진진하다. 현대 미술의 미적 근거에 대한 사회적 판단이라는 의의도 지니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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