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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입고 PPT 없애고… DNA 바꾼 현대카드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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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입고 PPT 없애고… DNA 바꾼 현대카드 미래는

입력
2016.05.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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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영 부회장의 파격 실험

예쁘고 화려한 보고서 대신

A4용지 한 장으로 상부에 보고

점심시간 자율제ㆍ승진연한 축소

정장 외 체크무늬 셔츠도 허용

디지털 경영 혁신 안팎서 주목

“현실 외면 땐 흐지부지” 시각도

현대카드 김모(45) 부장은 올해 들어 회사에서 겪었던 가장 난감한 일로 “파워포인트(PPT)를 활용한 보고ㆍ발표 전면 금지”를 꼽았다. 15년 넘게 회사생활을 하며 “PPT 보고를 업무 완성의 마침표”라 여겨왔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처음에는 팀원들이 이메일을 보내거나 구두로 보고할 때마다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중간 관리자’인 그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 건 임원들에게 직접 보고를 할 때였다. 김 부장은 “‘이렇게 간단히 보고를 해도 되나’ 하는 생각에 이메일 보내기를 망설인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도 최근엔 간단한 업무는 유선전화나 메신저로 임원에게 보고를 한다.

PPT 보고ㆍ발표 금지는 회의 풍경도 바꿔 놓았다. 이전까지 회의의 터줏대감이었던 PPT 출력물은 핵심만 추려 손으로 쓰거나, 문서작업을 한 A4용지 한 장으로 대체됐다. 입사 6년차인 안모 대리는 “예쁘고 화려한 PPT 디자인을 찾을 때마다 ‘보고를 위한 보고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회의시간에 논의가 활발하고 의사결정도 빨라졌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오전 근무(오전 9시~오후 12시)-점심시간(오후 12~1시)-오후 근무(오후 1시 이후)’로 이어지는 일과 시간에도 변화가 생겼다. 현대카드에 지난해 입사한 정모(29)씨의 오전 일과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다. 점심시간(오후 2~3시)에 사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 뒤 오후 3시부터 업무에 복귀한다. 이달부터 점심시간을 없애고, 일과 중 1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업무 일정에 맞춰 점심시간을 쓸 수 있으니까 집중할 때 집중할 수 있어 업무 능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디지털 현대카드’를 내건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잇따른 실험이 사내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다. 유연성ㆍ자율성ㆍ효율성을 강조하며 기업문화 혁신에 나선 것이다. 정 부회장은 이를 “디지털 시대에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PPT 보고ㆍ발표 금지, 점심시간 자율제 외에도 현대카드는 올해 2월 직급별 승진연한을 2년으로 줄였다.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능력중심 인사체계로 개편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사원(4년)→대리(4년)→과장(5년)→차장(5년)→부장 등 진급하려면 4~5년의 승진연한을 채워야 했지만 앞으로는 대리 2년차도 뚜렷한 성과만 있으면 과장이 될 수 있다. 입사 후 부장 승진까지 걸리는 시간 역시 최소 18년에서 8년으로 줄었다. 지난 1월에는 새로운 근무복장 규정인 ‘뉴오피스룩(New Office Look)’을 도입해 정장 외에 청바지, 체크무늬 셔츠 등 캐주얼 복장도 허용했다.

업계에서는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카드 오너가의 일원이어서 과감한 조치가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고용된 다른 카드사 최고경영자(CEO)는 기업문화 개선보다는 단기 실적 개선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다.

시도는 훌륭하지만 성공을 장담하기는 이르다. 앞서 이런저런 파격 조치를 시행했던 다른 기업들의 경우에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파격에만 매달려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이런 실험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대학원장은 “네덜란드에선 유연ㆍ재택근무제 활성화로 빌딩 임대료가 낮아지는 등 이미 업무 공간ㆍ방식에 대한 형식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며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연한 기업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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