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건축계 최대 행사 중 하나인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이 28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개막한다. 이번 건축전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칠레 출신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총감독을 맡았다. 전시 주제는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 아라베나 총감독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건축계의 도전과 그 결과를 비엔날레에서 소개하겠다고 밝혔다.
공식 개막에 앞서 26일 개관한 한국관의 화두는 ‘용적률 게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이다.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연면적(건물 바닥 면적의 합)의 비율로 지금 한국 도시건축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이자 건축가들의 사투의 대상이다. 한국관 예술감독인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는 용적률이 “지난 50년 동안 서울의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이자 집단적 욕망을 드러낸 지수”라고 말했다. 한정된 대지에 최대의 건물 면적을 요구하는 건축주와 건물의 조형적 완성도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축가, 이를 통제하는 한국사회의 법과 제도가 뒤얽힌 가운데 용적률 제한을 창의성의 근거로 역이용하려는 건축가들의 사투를 조명한다는 취지다.
김 교수와 함께 젊은 건축가 5인, 신은기, 안기현, 김승범, 정이삭, 정다은이 공동 큐레이터로 나서 전시를 꾸몄다. 이들은 서울에 있는 약 60만동의 건물 데이터를 분석해 현실에서 어떻게 용적률과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며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의미와 가능성을 지니는지를 살폈다. 또 서울의 인구 밀도, 도시 성장에 관한 데이터와 함께 현대 도시의 모습을 블록부터 개별 건물 단위까지 세밀하게 분석해 시각화했다. 한국관 중앙에는 36개 건축물의 72개 대형 모형과 도면 등을 설치해 관객들의 눈을 사로 잡을 예정이다.
안기현 건축가(ANL스튜디오)는 “과거 한국 사회에서 건축이란 거대 자본과 맞물리는 큰 개념이었지만 IMF 이후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질 좋고 다양한 공간을 갖춘 내 집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작은 건축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며 “이에 따라 젊은 건축가들의 할 일이 늘어났고 이들은 이른바 집 장사라 불리는 사람들과 경쟁하는 한편 용적률 제한과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중산층과 자영업자들의 삶의 터전인 다가구, 다세대, 상가주택 등 가장 보편적인 중간 건축을 다양한 사람의 시각과 매체로 조명했다”며 “이를 통해 그 동안 건축 예술의 영역으로 보지 않았던 작은 건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방식의 용적률 게임을 해부하고 작은 단위의 도시재생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치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건축을 사회적 이슈로 끌어들인 한국관은 최근 뉴욕타임스가 꼽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꼭 봐야 할 전시 6’에 드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신문은 “한국에서 용적률은 뜨거운 화두이며 시장의 변화에 발 맞추려는 건축가와 삶의 질을 추구하는 건축주들의 욕망이 흥미롭게 뒤섞여 있다”고 평가했다.
격년으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총감독이 직접 작가를 선정해 구성하는 본 전시, 각국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국가관 전시, 본 전시와는 별도로 진행되는 부대행사인 병행 전시로 나뉘어 11월 27일까지 6개월 간 이어진다. 아르세날레에서 열리는 본 전시에는 37개국 88명이 참가한다. 그 중 50명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초대되었고, 33명은 40세 미만의 젊은 건축가다. 한국에서는 설치미술가 최재은이 비무장지대(DMZ)를 배경으로 한 프로젝트 ‘꿈의 정원’으로 본 전시에 참가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본 전시에 국내 작가 초청은 4년만이다.
최재은 작가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와 협업으로 선보이는 ‘꿈의 정원’은 지뢰로 가득 찬 비무장지대에 3~6m 높이의 공중정원과 보행로를 만들어 사람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제거에 500년 가까이 소요된다는 지뢰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갈등과 분단을 생명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베네치아=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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