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오에 겐자부로, 냉소적 반응
中 외교부장 “난징 잊으면 안 돼”
27일 일본 히로시마(廣島) 시내 어디를 가도 시민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원폭투하 ‘가해국’으로서 피해국 일본에 사실상 고개를 숙인 것이란 ‘외교적 승리론’이 보수 우익진영을 들뜨게 했다.
일본 방송 매체들은 이날 내내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위령비에 헌화하고 묵념하는 화면을 거듭거듭 내보냈다. 일부는 오바마 대통령을 히로시마로 모셔오기까지 과정이 험난했다면서 외교적 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특히 “역사문제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ㆍ한국 측의 관계 냉각화가 발목을 잡았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일본 방문 예정이 없었기 때문에 히로시마 방문만을 위해 일본을 찾는다면 한국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또 보류돼, 방문 가능성은 2016년으로 좁혀졌다”고 전했다.
반면 진보 진영을 포함한 지식층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는 아베 정부에 힘을 실어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일본이 자랑하는 평화의 상징으로서 히로시마의 교훈이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뉴욕타임스에 “히로시마는 단순한 도시 이상이다. 히로시마는 일본 국민감정의 근본적인 표현이었는데 여전히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고 냉소적으로 반응했고, 일본 시민단체 피스보트의 요시오카 다쓰야는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으로 아베는 성공하겠지만 이는 일본 헌법 9조를 폐기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히로시마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운동가도 “오바마가 다녀갔다고 바뀔 것은 없고 아베 정권에 히로시마가 이용되는 것도 보고 싶지 않다”며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장하지만 미국은 핵예산을 늘리고 있는 나라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히로시마(원폭피해)는 주목받을 가치가 있지만 난징(南京)(대학살)을 잊으면 더욱 안 된다”며 “피해자는 동정을 받아야 하지만, 가해자는 영원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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