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을 보이소”
최근 국제공항 10곳 중 6곳이
해상 매립이나 해안 지역 건설
밀양처럼 내륙 장애물 없어
“인천공항 보이소(보세요). 매립해서 24시간 잘만 운영하는데…”
지난달 31일 오후 1시 부산 신공항 후보지 인근 강서구 대항동 대항전망대에서 만난 낚시꾼 김명훈(53ㆍ부산 동래구)씨의 말이다. 전망대 한편에는 ‘신공항까지 건설되면 가덕도가 국제적인 관광휴양도시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대항전망대 바로 아래에는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인 대항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240여가구가 사는 작은 어촌이다. 대항마을 사람들은 신공항 유치를 의심치 않는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하고 있었다. 여느 개발계획이 선 동네와 마찬가지로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와 삶의 터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공존하는 상태였다.
마을버스 운전기사 이석진(63)씨는 “가덕도에 신공항을 만드는 비용이 경남 밀양보다는 적게 든다고 한다”며 “건설비용과 입지조건 측면에서 신공항이 가덕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변에서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고 전했다.
마을차원에서 공개적인 반대입장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 지역적인 열망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가덕도 주민 대표자들은 지난달 23일 조용히 부산시청을 찾아 관계자 면담을 가졌다. 황영우(52) 대항마을 통장은 “반대를 하러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며 선을 긋고 “주민들에게 신공항 유치 또는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공청회나 설명회를 열어서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가덕도에서도 마을마다 온도 차가 있었다. 대항마을에서 멀어질수록 찬성 입장을 밝힌 주민들이 늘었다. 직선거리로 약 2㎞ 떨어진 가덕도 성토봉 너머 천성마을도 그랬다. 정종봉(81)씨는 “밀양에 세우면 좋다는 것은 정치적인 논리일 뿐”이라며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가덕도에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국지적인 온도 차와 달리 부산 전체의 신공항 유치 여론은 뜨겁다. 가덕신공항추진범시민운동본부와 김해공항가덕이전시민추진단은 2일 오후 부산 서면의 한 백화점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약 3,000여명의 시민들이 신공항 유치를 염원하는 촛불을 들었고 서면에서 송상현 광장까지 약 1.6㎞ 구간 가두행진을 벌였다.
신공항 요구는 기존 김해공항의 잦은 사고와 맞물려 줄곧 제기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4월 15일 중국민항기 돗대산 충돌 사고다. 당시 선회지점을 지나친 여객기가 경남 김해시 대동면 돗대산(해발 381m)에 부딪혀 승객 12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당했다.
부산시는 현재 건설 중인 중국 다롄국제공항을 포함, 최근 건설된 세계 국제공항 10곳 가운데 6곳이 해안 또는 해상매립 공항이라는 점을 들어 내륙인 밀양에 비해 가덕도의 입지조건이 유리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나머지 4곳도 도심 외곽 평원이나 사막지역으로 내륙을 깎아 만든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용역결과 발표를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라 최적 입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시는 밀양을 지지하는 지자체와 상반된 해석을 내놓는다.
먼저 접근성 측면에서 대구와 경북 등에서 가덕도까지 1시간대에 도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부산신항배후도로, 부산-대구 고속도로, 부산외곽순환도로, 부산해안순환도로(이상 도로)와 부산신항배후철도-KTX(삼랑진), 마산-부전-울산, 삼랑진-진주, 울산-포항 복선철(이상 철도)가 있다는 것이다. 만성적자 공항 우려에 대해서는 김해공항의 수요를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해공항의 흑자규모는 2011년 654억원, 2012년 746억원, 2013년 800억원, 2014년 889억원, 2015년 1,015억원으로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대규모 매립으로 인한 해양오염과 골재 채취로 인한 산지훼손 우려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거 가덕도 내 부산신항만 매립(1,000만㎡) 사례를 돌이켜보면 해양오염과 해상환경 변화가 미미했다는 것이다. 국수봉을 절취하고 절취면에는 공항을 건설, 산지훼손을 줄이고 비용감소와 사업성을 극대화하는 일석이조 효과도 강조하고 있다.
부산시는 신공항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병수 시장은 수차례 “신공항 유치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공언했다. 유치에 실패할 경우 시장직 사퇴에 따른 재선거를 치러야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 배수진을 친 상태다. 서 시장은 지난 선거에서 부산의 동서 균형발전을 모토로 한 ‘서부산권 개발’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는데, 가덕신공항은 그 핵심 플랫폼이다. 또 시가 2030년까지 낙동강을 중심으로 북구, 사하구, 강서구 일대 437㎢를 대상으로 추진 중인 ‘서부산 글로벌시티 그랜드플랜’ 도면에는 가덕도에 신공항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신공항 유치에 실패한다면 글로벌이라는 말은 무색해진다.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배경 삼아 국제공항으로 엄청난 인바운드 고객을 끌어드릴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두고두고 땅을 칠 것이라는 게 시의 판단이다.
특정 이슈를 놓고 부산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이렇게 뭉친 예도 흔치 않다. 가덕신공항추진범시민운동본부 대표들은 1일 국회를 찾아 여야 원내대표와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고정장애물 배점이 평가항목에서 빠지면 안 된다”고 성토했다. 함께 있던 부산 여야 의원들도 공정한 용역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인호 가덕신공항추진범시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는 “정부는 지방의 작은 공항을 짓는 게 아니라 24시간 운항 가능한 허브공항을 건설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주변 장애물이 없고 매립을 통해 확장성이 뛰어난 가덕도를 선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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