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치곤 썩 달갑진 않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아니 고치기는 할까 싶은 뒤늦은 열풍이라 그렇다. 해서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가 풍성하지만, 아예 두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지만, 그렇기에 그 페미니즘은 ‘화난 언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여성문화이론연구소가 펴내는 계간지 ‘여/성이론’ 여름호는 특집 ‘개그 / 우먼 / 미디어’을 통해 화난 언니들의 속사정을 다뤘다.
여성 혐오는 오래된 현상이다. 그래서 최근 사태에서 가장 눈 여겨 볼 점은 일반 여성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다는 대목이다. 그간 ‘화이트 칼라 중산층 여성 중심’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었던 페미니즘이 저변을 넓힌 것이다. 이에 맞춰 이번 여름호는 페미니즘의 대중화 현상을 다룬 ‘개그 / 우먼 / 미디어’ 특집을 실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거울을 비추며 웃고 떠드는 여성들 : 쓰기-주체-되기의 정치성’이란 글을 통해 ‘메갈리안’을 분석했다. 메갈리안은 디씨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메갤)에서 여성혐오발언을 거울에 비친 듯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미러링’ 전술을 구사하는 이들을 말한다.
양 평론가가 힘 쏟는 부분은 ‘애초 취지는 좋았을지 모르나 결국 메갈리안의 화법 역시 극우사이트 일베(일간베스트)를 닮아 버리고 말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메갈리안의 가장 큰 미덕은 적극적으로 말하고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남에 의해 규정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고 있다. 그래서 메갈리안에서 먼저 볼 지점은 그 내용에 앞서 “숱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능동적 쓰기”를 실천한다는 데 있다.
미러링 화법이 다소 거친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메갈리안과 일베는 그렇기에 다르다. 일베가 “강고한 권력”을 지향한다면 메갈리안은 “교환적 방식”에 의존한다. 글 자체보다는 “담론에 개입하는 많은 이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만드는 방식” 그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그런 차원에서 대중문화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 연구원은 ‘젠더전과 퓨리오-숙들의 탄생’이란 글에서 개그맨 장동민 파문, 남성 잡지 맥심 표지 사건 등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일들이 논란이 되는 현상을 ‘파퓰러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해석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전까지는 대중문화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위한 이데올로기 장치”로만 파악했는데 그 단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얘기다. 유명인 중심의 페미니즘을 넘어 대중문화 영역에서 드러나는 통속적인 페미니즘도 잘 들여다 봐야 한다는 얘기다.
심혜경 천안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개그 / 우먼 / 미디어 : 김숙이라는 현상’에서 대중문화의 통속적 페미니즘 대표 사례로 개그우먼 김숙을 분석한다. 심 프로그래머는 김숙에게서 “여성해방이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무게, 진지함, 숭고미나 전통, 투쟁의 역사와 현실의 문제”를 찾아보긴 어렵다고 총평했다. 하지만 김숙의 유려한 말솜씨 같은 것들이 “젠더 시스템을 흔드는 유연한 페미니스트 전략임에는 분명하다”고 밝혔다. 안심은 이르다. “김숙이 흩트려 놓은 젠더성이 앞으로 미디어에서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관건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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