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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 "외국어ㆍ유도ㆍ승마...비장의 무기 많습니다"

입력
2016.06.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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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발음과 중저음이 인상적인 배우 최진호는 "내레이션 제안이 많이 들어오나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바빠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정현 인턴기자
바른 발음과 중저음이 인상적인 배우 최진호는 "내레이션 제안이 많이 들어오나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바빠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정현 인턴기자

애초엔 유도선수였다. 중학교 때 시작해 대학도 유도로 진학했다. 대학 2학년 때쯤 연기하는 친구의 손에 붙들려 처음 카메라 앞에 섰다. 당시 한창 인기 있던 KBS ‘사랑방 중계’의 에피소드 촬영을 위해서였다. “2만~3만원을 준다고 해서 신기해 하며 따라 간” 자리였는데, 평생의 업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악역 전문 조연으로 대중들의 눈을 훔치고 있는 배우 최진호(48)의 출발은 화려한 필연보다 남루한 우연에 가까웠다.

연기에 마음을 사로잡혀 20년 넘게 카메라 앞에 남았다. 영화와 드라마 100여 편의 단역을 거쳐 조연에 올랐고, 주연을 넘보는 위치에 이르렀다. 지난 4월 개봉해 106만3,262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보며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 ‘날, 보러 와요’로 생애 첫 주연을 맡기도 했다. 연기를 전공하지도, 연극무대를 거치지도 않은 배우치고는 매우 드문 생존이자 성과다.

“이제야 1군에 올라와 7, 8번 타자로 타석에 서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5번 타자까지는 하고 싶다”라는 최진호를 ‘사이드-B’ 세 번째 손님으로 최근 만났다. 그는 “나는 연기를 실전에서 배웠다”며 “숱하게 베이다가 어떡하면 베이지 않고 상대를 벨 수 있을까 고민하며 조금씩 실력이 늘어난 경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악역 배우답지 않게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나와 시를 읽었다.

“다들 악역 배우라면 평상시에도 화를 잘 내고 말투도 악역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역은 내 역할일 뿐이다. ‘라디오스타’에서 읽은 시 ‘엄마’는 연기노트에 적어놓았던 것이다. 연기노트는 13년 동안 계속 써서 50권 정도 된다.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 표정, 자료 조사 등이 담겨 있다.”

-유도를 오래 해서 계속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텐데.

“대학 때는 시합 나가기 싫어하고 놀기 바빴다. 체급은 가장 낮은 60㎏급 엑스트라 라이트였다. 운동 시작할 때는 체육인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이 내게 큰 벽이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였고 우상이었는데 내가 과연 그런 사람을 꺾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카메라 앞은 언제 섰나.

“1989년인가 ‘사랑방 중계’ 촬영장에 친구 따라 갔다. 나중에 그룹 잼으로 활동한 윤현숙 등과 함께 촬영을 했다. 그때는 연기가 천직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TV로 내 모습을 보는데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긴장한 표시가 나고 숨도 안 쉬어졌으나 현장에서의 경험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단역 배우 관리) 회사를 찾아가서 단역으로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유도 말고 다른 운동도 좀 하나.

“기본적인 건 다 한다. 검도 복싱 승마도 조금씩 한다. 운동한 경험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얼마 전 종방한 SBS드라마 ‘미세스 캅2’에선 북한 공작원 출신을 연기해 거의 매 장면 액션을 소화해야 했다. 스턴트 하는 친구들이 ‘미세스 캅’ 시리즈 배우 중 가장 무술을 잘 한다고 칭찬해줘 기분이 좋았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2'의 최진호.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엽기적인 그녀2'의 최진호. 리틀빅픽쳐스 제공

-연기를 위해 승마와 복싱 등을 따로 배운 것인가.

“아니다. 취미생활이었다. 예전 경마장이 서울 성수동에 있었을 때 아버지 따라다니며 승마를 배웠는데 사극할 때 도움이 된다.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써먹어야지 하고 배운 게 아닌데 틈새를 공략할 때 도움이 된다. 단역 배우로 뚫지 못하는 역할이 있는데도 그나마 나를 많이 불러줬던 게 외국어 실력이다.”

-어떤 언어가 가장 자신이 있나.

“자신까지는 아니고 영어 일어 중국어를 좀 한다. 드라마 ‘유령’ 출연할 때는 국내 배우로는 처음 광둥어를 구사했다. 한국어 대사는 한마디 없던 역할이었다. 얼굴 때문에 내가 홍콩 사람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드라마 출연할 때는 외국인 배역을 많이 했다. ‘토지’의 일본 헌병대장, ‘대장금’의 왜군 조장 등이 외국어의 도움을 좀 많이 받은 배역들이다.”

-영화 ‘도둑들’에선 홍콩 삼합회의 간부급 조직원으로 등장한다.

“‘도둑들’에선 광둥어와 베이징어를 섞어 썼다. 원래 베이징 사람인데 홍콩으로 스카우트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오디션을 볼 때 최동훈 감독님이 5분만에 ‘OK, 이 분’ 하고 결정해서 출연하게 됐다.”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 배경은?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중국어다. 정말 어렵더라. 학원비도 없고 해서 혼자 하루 10시간에서 15시간씩 공부했다. 한번 허리 펴고 화장실 다녀와서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역설적이게도 일이 없어서 가능했다. 돈은 벌어야 하는데 일이 없고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 버리면 나중에 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집중하고 매달렸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못 견디니까. 그런데 그게 결국 무기가 됐다.”

-영어나 일본어는 어떻게 공부했나.

“학원 다니면서 배웠다. 대학 졸업할 때까진 영어를 잘 못해서 외국 나가면 무시 당했다. 대학 3,4학년 때 영어와 일어 학원을 번갈아 다니며 공부했다. 그때는 부모님이 살아계셨고 집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으니까. 운동하는 사람이 무식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공부는 못했는데 어학은 재미있었다. 외국어를 해서 상대방이 알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요즘은 시간이 남는 편인가, 없는 편인가.

“배우 생활하며 지금이 제일 바쁜 시기다. 이렇게 바쁜 적이 없다. ‘미세스 캅2’ 종방 파티를 한 뒤 사흘 쉬고 SBS 드라마 ‘대박’ 촬영에 들어갔다. ‘대박’이 끝나면 영화 촬영한다. 영화사에서 배려를 해줘서 내 촬영 분량 일정을 늦춰줬다. 영화 촬영 끝나면 또 드라마 영화가 하나씩 더 있다. 몸은 많이 힘든데 감사해야 하는 시기다.”

영화 '날, 보러와요'의 최진호.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날, 보러와요'의 최진호.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날, 보러와요’로 첫 주연까지 했다.

“드라마까지 따지면 20년 만이다. 영화로는 ‘토요일 오후 2시’에서 단역을 한 뒤로 19년 만이다. ‘날, 보러와요’는 내겐 정말 의미가 깊은 영화다.”

-연기를 하자고 마음 먹었을 때 목표가 있었나.

“첫 번째 목표는 오디션 없이 영화나 드라마를 해보는 거였다. 단역 배우 시절엔 소속사에서 유명한 배우들과 끼워 넣기 하는 식이 많으니까. 촬영 현장에서 단역으로서 느끼는 설움이 많았다. 생활이 유지가 안 되는 것도 힘들었다. 가족들이 ‘그거 그만하면 안 되냐’라고 말했을 때 종종 흔들렸다. 이게 정말 맞는 길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실제로 앞은 잘 안보이고 나이는 점점 차오르니까 회의가 생겼다. 그럴 때가 가장 힘들다.”

-가장 큰 위기가 언제였나.

“위기는 아주 많았다. 2010년쯤 한 2년 정도 일이 없어서 연기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친 적도 있다. 그때 제자가 성훈, 파비앙, 줄리엔 강 등이다. 학원 생활을 하지도 못했으면 연기를 그만뒀을 것이다. 아마 못 견뎠을 것이다.”

-붕어빵으로 며칠을 버텼다는 말도 있던데.

“1,000원에 붕어빵 2개, 2,000원에 5개 주던 때가 있다. 돈이 없으니 붕어빵 5개를 사서 사흘 동안 조금씩 나눠 먹었다. 좀 오래 된 일이다. 2013년 드라마 ‘상속자들’에 출연하면서 그나마 따뜻한 밥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그 전까지는 (연기로는) 거의 생활이 안 됐다.”

-연기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었겠다.

“2012년 드라마 ‘유령’ 출연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병원비를 한 번도 못 냈다. 내가 배우 생활을 십 년 넘게 하고도 병원비 한 푼 못 낸다는 생각에 비참해졌다. 다시는 이런 설움 안 겪도록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도둑들'의 최진호. 쇼박스 제공
영화 '도둑들'의 최진호. 쇼박스 제공

-‘도둑들’ 촬영 때는 일부러 머리에 흉터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촬영 들어가기 전 (흉기로) 머리를 긁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배역의 과거를 표현하고 싶었다. 머리를 위에서 봤을 때(그가 연기한 ‘애꾸눈깔’은 머리카락이 없다) 도끼자국 같은 흉터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최동훈 감독이 매우 고마워했다. 흉터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밝힐 수 없다. 평생 갈 흉터다.”

-‘도둑들’과 ‘더 테러 라이브’는 흥행에 성공했으나 배우로서 인지도는 얻지 못했다.

“예전 힐튼호텔 총주방장이었던 박효남이란 분이 ‘이름 석 자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죽기살기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름 듣고 그 사람이 떠오르면 어떤 직업에서든 성공한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단계가 못 됐다. 아직도 알려가는 과정에 있다.”

-한 순간에 스타가 되는 젊은 배우들 보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

“촬영 현장에서 만나보면 다 납득이 간다. ‘엽기적인 그녀2’로 만난 차태현,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에서 함께 연기한 소지섭 등은 만나 보면 정말 진국이다. 왜 정상급일 수밖에 없는지 자연스럽게 수긍이 가는 사람들 만나면 기분이 좋다. 그런 좋은 배우를 더 많이 알아가는 게 내겐 기쁨이고 감사한 일이다.”

-단역으로 만나 주연급으로 성장한 배우가 누가 있나.

“최재성 선배가 주연했던 드라마 ‘화려한 휴가’에서 이성재가 경찰기자1, 내가 경찰기자3이었다. 나중에 이성재가 주연한 영화 ‘신석기 블루스’(2004)에서 다시 만났다. 단역으로 시작해서 나만큼 올라온 배우가 거의 없다. 간혹 TV로 예전 함께 활동하던 단역 배우를 보면 안쓰럽고 스스로에게 고맙기도 하는 등 복잡한 생각이 든다. 드라마 할 때 영원히 단역 배우로 남을 것 같아 굶어 죽어도 승부를 보겠다며 1998년 영화 쪽으로 옮겨왔다.”

-‘엽기적인 그녀2’는 팔이 부러진 채 촬영했다는 말도 있다.

“부러진 걸 모르고 촬영했다. 촬영 끝난 뒤 물건을 들지 못해 병원에 갔더니 부러졌다고 했다. ‘미세스 캅2’ 촬영하다 갈비뼈에 금이 갔다. ‘대박’ 등 촬영이 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배우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은 악역이 90% 정도다. 선한 역의 비중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연기 폭을 넓히려는 노력을 해야 선택도 받을 수 있다. 이순재 선생님이 아닌 이상 앞으로 10~15년 정도밖에 연기를 못할 듯하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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