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문제로 미중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지렛대)를 활용해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낸다는 당초 전략은 북중관계 개선 흐름까지 나타나면서 추동력을 상당 부분 잃고 있다. 정부가 애착을 보인 '한미중 전략대화'도 실현 가능성이 낮아져, 정부 접근법이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평가다.
외교부는 7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오는 12~13일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이라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만나 북핵문제 등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8~9일에는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 등을 만난다. 미중 갈등과 리수용 북한 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방중 등 최근 동북아 외교지형 변화에 따른 다급함이 묻어난다.
미국은 앞서 리수용 부위원장이 지난달 베이징을 전격 방문하자 곧바로 북한을 '자금 세탁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미중 경제전략대화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는 중국 통신기기 제조사인 화웨이(華爲)의 대북거래 조사에 착수하며 연일 중국을 압박했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경제전략대화 축하연설에서 '중미 신형대국관계'를 강조하며 에둘러 미국의 압박에 굴할 의사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게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주변국들의 효과적 공조를 얻어내기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흐름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북핵 문제에 대한 기본 전략은 ‘한미일 공조를 통한 대북압박+중국의 동참’이었다. 박근혜 정부 임기 초반부터 한중 관계에 부단히 공을 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계기로 미중 간 패권다툼 양상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우리 정부가 기대했던 대북공조는 동력을 잃은 모습이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 2270호를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대중 공세가 계속된다면 중국 역시 '대북제재 불이행' 카드로 맞설 가능성이 있다. 미중 경제전략대화에서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미중은 대북제재를 완전하게 집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발언 자체가 중국의 대북제재를 여전히 담보하기 어렵다는 미측의 불안감이 반영돼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엔 회원국들은 안보리 결의 채택 90일 이내에 이행보고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중국은 기한을 넘긴 이날까지 제출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을 등에 업고 북한을 압박한다는 우리 정부의 비핵화 전략 압축판인 한미중 전략대화도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인 한미중 전략대화는 2013년 7월 첫 회의가 열린 뒤 3년 동안 감감무소식이다. 더욱이 최근 미중 간 갈등 속에서 한미중 전략대화가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우리만의 대북 레버리지가 하나도 없는 실정”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미중 간 패권다툼을 뚫고 양국을 한미중 전략대화에 불러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는 미국과 중국과의 양자협의는 물론 한미중 등 다양한 대화채널을 통해 대북제재 강화와 북한 비핵화 공조를 보다 공고히 하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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