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섬마을에서 발생한 여교사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피해 과정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하거나 범죄와 관련성이 없는 피해자의 평소 행실에 주목하는 등 성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지나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5일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언론에 알려진 뒤 종합편성채널(종편)도 앞다퉈 이를 보도했다. 특히 채널A는 메인뉴스를 포함해 ‘시사인사이드’와 ‘쾌도난마’, ‘아침경제 골든타임’ 등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을 총동원해 이 사건을 자세하게 다뤘다.
‘지옥 같은 3시간’ ‘그 섬엔 무슨 일이?’ ‘섬마을 발칵 뒤집은’ 등 자극적인 제목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시사칼럼니스트, 변호사, 전직 형사 등으로 구성된 패널들은 여교사가 성폭행을 당하기까지 과정을 시간 별로 설명하기 바빴다. 이 중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직 형사는 “몸 속에서 두 명의 정액이 나왔다” “범행을 부인했던 피의자는 피해자의 몸 속에 DNA를 안 남게 (범행을) 하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등의 불필요한 발언을 이어갔다.
다른 프로그램에선 피의자들이 여교사에 술을 강권했다는 내용을 전하며 어깨동무를 한 두 남녀가 손을 잡고 다정하게 술을 마시는 자료화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자칫 피해 여교사가 학부모들과 술을 즐겼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영상이었다.
지난 3일엔 경제종합매체인 헤럴드경제가 이 사건을 온라인 기사로 보도하면서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 속 3명의 정액, 학부형이 집단강간’이란 제목을 달았다가 독자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이튿날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헤럴드경제는 사과문을 통해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 못한 선정적이고 저급한 제목으로 피해자들은 물론 국민들을 불쾌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선정적인 제목의 온라인 기사는 이 매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4일 강남 20대 여성 살인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역시 사고 당일 피해자가 평소 잘 가지 않던 강남역을 간 이유, 남자친구 모르게 대학 선배들과 술을 마신 상황 등 피해자의 행적을 지나치게 상세히 다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피해의 책임이 피해자로 향할 수 있는 소지를 만들 수 있어서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성범죄 보도에서 피해자의 평소 사생활은 중요한 지점이 아님에도 유독 이를 부각시켜 보도한 건 문제”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불필요한 성적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 금지 및 피해자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2012)을 세운지 오래지만 여전히 실천은 먼 이야기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언론이 성범죄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통념을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2차 피해가 유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범죄 보도 윤리는 무엇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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