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남쪽 브라이턴 주민들
각자 준비한 음식 나눠 먹어
“안면 트면 많은 것 공유 가능”
이웃과 야외서 점심 ‘더빅런치’
작년 영국 인구의 12%가 참여
“상대가 무얼 필요한지 알게 돼”
로렌스 레식 미 하버드 법대 교수는 2008년 협업소비를 기본으로 한 ‘공유경제’(Sharing Economy) 개념을 주창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ㆍ저성장 국면에서 단숨에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면서 2011년 주간지 타임은 공유경제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10대 아이디어’로 소개했다. 이후 이미 우버, 에어비앤비 등 일부 모바일 플랫폼 기업이 기업가치 수십 조원에 달하는 거물로 부상했지만 공유경제에 대한 대중적 갈증은 여전하다. 역설적이게도 정보통신(IT)기술 기반이 아닌 과거에도 존재했던 공동체 문화에 바탕을 둔 공유경제에 대한 갈증이다. 2008년 이후 공유경제의 부상은 낮은 가격에 더 많은 편의를 제공 받기 원하는 소비 성향과 더불어 소비와 향락, 과열 경쟁 피로감의 발로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비즈니스 모델의 본보기 개념이 강했던 공유경제는 이제 공동체적 삶을 꾸리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식이 전환하고 있다. 비즈니스의 대안을 넘어 문화 운동으로 진화하는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 영국 브라이튼과 런던의 공유경제 현장을 다녀왔다.
영국 런던 남쪽 해안도시 브라이튼에서 매년 열리는 길거리 파티(The Great Street Share Brighton)는 공동체 복원을 시도하는 공유경제 활동의 대표적 사례다. 수년간 꾸준히 열리면서 사회적 기업 더피플후셰어(The People Who Share)가 기획한 세계공유주간 캠페인의 대표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50여명의 지역 주민들은 5일(현지시간) 차량이 통제된 콤튼(Compton) 도로에 테이블을 펴고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모아 파티를 열었다.
주메뉴는 바비큐 그릴에 구운 고기와 소시지를 곁들인 햄버거. 샐러드와 나초칩, 케이크 등 디저트가 곁들여졌다. 맥주와 스파클링 와인도 자유롭게 마실 수 있게 식사 테이블 주변에 비치됐다. 화려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서먹한 이웃과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 지역에 6년 살았다는 재니스 존슨(56)은 지역신문에서 소식을 접하고 이웃과 친분을 쌓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요즘처럼 이웃끼리 소통하지 않는 시대에는 슈퍼마켓에서 자주 얼굴을 접하는 이웃도 말 한마디 붙여보기가 쉽지 않다”며 “음식이 서먹함을 없애 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안 고든(51)은 “이곳에서 일단 안면을 트면 많은 것을 이웃과 공유할 수 있고, 그게 바로 공동체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소피 셰인왈드(47)는 파티 참석 이유를 묻는 질문에 “공유경제의 중요한 콘셉트가 균형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라이프 코치가 유행인 것만 봐도 요즘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알 수 있다”며 “오늘 모인 공동체가 각 개인의 긍정적인 기운을 되살려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 공유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여 공유경제를 일구려는 이들이 가장 흔하게 선택하는 방식이다. 특히 개방된 야외에서 진행되는 길거리 파티는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공유경제의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이들에게도 부담이 없다.
이 같은 음식 공유는 우버,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 기업이 주류 산업으로 자리잡은 런던에서도 크고 작은 규모로 꾸준히 열리고 있다. 런던은 지난해 우버 운영에 합법 판결을 내렸고, 내년부터는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 플랫폼 기업을 이용하는 주택 소유주에게 면세 혜택도 준다.
6일 런던 동부의 혼빔(hornbeam) 채식카페 겸 커뮤니티센터에서는 노숙인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는 피플스 키친(people’s kitchen)이 열렸다. 모든 식재료는 주변 대형마트 테스코 등에서 기부한 식품 재고 등을 활용했다. 혼빔 카페는 1994년부터 운영됐지만 피플스 키친 행사는 이번이 3번째다. 2002년부터 혼빔 카페를 운영해 온 브라이언 켈리(47)씨는 “에어비앤비 등 공유기업이 주목 받으면서 관계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피플스 키친은 노숙인에게 식사뿐 아니라 자원봉사자와 자연스럽게 교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줘 그들의 재기를 돕는 행사”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혼빔 카페를 찾은 노숙인들은 식사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다 돌아갔다.
영국 여러 도시와 시골 마을에서 이웃과 야외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 ‘더빅런치’(the big lunch)는 음식 공유와 관계 회복의 연결고리가 정점에 도달해 있는 이벤트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 ‘에덴프로젝트’가 2009년부터 기획해 꾸려 왔다. 6,300만 영국 인구가 모두 점심을 함께 먹고 우정을 나눌 수 있게 하자는 게 행사의 궁극적 목표다. 지난해는 인구의 12%가까이 되는 729만명이 참여했다. 지난해 더빅런치가 끝난 후 광고그룹 하바스미디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참여자의 85%가 이웃에 대해 더 좋은 느낌을 갖게 됐다고 말했고, 10명 중 8명은 더빅런치 참여 후 이웃과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말했다. 올해 행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90번째 생일인 12일에 열린다.
결국 유럽에서 공유기업에 개방적인 영국에서조차 공유경제의 중심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공유기업 성장과 동시에 점점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브라이튼 콤튼 도로의 길거리 파티에서 만난 이안 그리드(48)씨는 “사교활동을 위해 거주지 런던에서 브라이튼까지 기꺼이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사귐을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공유경제 구현의 첫 걸음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런던ㆍ브라이튼(영국)=글ㆍ사진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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