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무게 지탱하는 피아노 줄
연주회 500번 중 한 번 꼴로 파손
줄 1개인 저음 끊어지면 연주 중단
바이올린 협연시 솔리스트 현 끊어지면
악장→뒤 연주자 순 악기 바꿔
마지막 연주자가 무대밖서 현 교체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발렌티나 리시차는 강한 타건ㆍ광속 연주로 ‘제2의 마르타 아르헤리치’로 불리는 피아니스트다. 다른 말로 하면 ‘피아노 줄 많이 끊을 것 같은 연주자’. 완벽주의 때문에 연주회를 밥 먹듯 취소하는 ‘캔슬의 여왕’ 아르헤리치는 1994년 기돈 크레머와 내한연주회 때 여자 연주자로는 드물게 공연 중 피아노 줄을 끊어 국내에서 유명세를 탔다.
지난달 내한 공연을 예정했다 취소한 러시아 출신의 베레조프스키 역시 연주회 중 피아노 줄 많이 끊는 연주자로 유명하다. 2009년 내한공연 당시 쇼팽 협주곡 2번을 연주하다 실제로 줄이 끊어졌는데, 그는 익숙하다는 듯 오케스트라 반주가 나올 때 피아노 안으로 몸을 숙여 끊어진 줄을 한쪽으로 젖히고 연주를 이어갔다.
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피아노줄은 대략 영화나 드라마 촬영시 두 사람의 무게를 지탱하는 와이어와 비슷한 굵기다. 이 굵은 줄이 그것도 연주회 도중 끊어지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흔히 3가지를 꼽는다. ▦강한 타건 ▦오래된 현 ▦나쁜 운이다. 예술의전당 이종열 조율사는 “스타인웨이 회사에서 한번은 통계를 내 ‘연주회 500번 중 한번 꼴로 현이 끊어진다’고 발표한 적 있다”며 “예술의전당은 3년에 한번씩 모든 피아노 줄을 교체하지만 그래도 연주 중 줄이 끊어지는 운 나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피아노 보다 현이 가는 바이올린, 첼로는 연주 중 줄 끊어지는 경우가 더 잦다. 17일 디토페스티벌 연주회를 앞둔 신지아씨는 재작년 4월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의 취임 축하 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협주곡을 연주하다 줄이 끊어졌다. 4일 일본 센다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장유진 역시 2007년 하이서울페스티벌 야외음악회에서 사라사테에 의한 카르멘 환상곡을 연주하다 줄이 끊어졌다. 첼리스트 장한나는 2011년 내한연주회 때 앙코르곡을 연주하다 줄이 끊어졌다.
대처법은 악기별, 연주자별로 제각각이다. 피아니스트의 경우 대부분 베레조프스키처럼 연주를 이어간다. 이종열 조율사는 “보통 고음 영역의 줄이 끊어지는데 건반 당 줄이 3개라 1, 2개 끊어지면 약하지만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단, 아주 드물지만 건반 당 현이 1개 밖에 안 되는 저음 영역대에서 참사가 발생하면, 연주를 멈추고 조율사가 현을 갈 수 밖에 없다. 이 조율사는 “만약을 대비해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조율사가 있는 게 바람직하지만 조율비가 시간당 책정되기 때문에 연주회 전까지만 조율을 부탁하는 기획사가 99%”라며 “리허설 때 타건이 센 연주자는 불안한 마음에 (조율비를 제대로 못 받아도)그냥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바이올린, 첼로 협연 시 솔리스트 악기 줄이 끊어지면 일반적으로 악장, 수석의 것과 바꿔 연주하고, 악장은 ‘문제의 바이올린’을 뒤 연주자의 것과 또 교환한다. 이 ‘물물교환’ 끝에 줄 끊어진 악기를 든 맨 마지막 연주자가 무대를 나가 줄을 갈고 다시 들어온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2007년 하이서울페스티벌 때 장유진씨 바이올린은 부악장의 것과 교환했다”며 “바이올린 맨 마지막 연주자는 현이 끊어질 것을 대비해 항상 여분의 현을 가슴에 넣은 채 무대에 선다”고 덧붙였다. 2011년 9월 정기연주회 때 활이 부러지는 대참사(?)를 겪었던 장하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악장은 “옆 수석은 저를 대신해 교향곡을 이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뒤 연주자와 바꿨다”며 “맨 마지막 연주자가 퇴장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1분 미만”이라고 말했다.
장한나와 신지아는 좀더 자유분방한 케이스다. 신지아는 지휘자와 함께 퇴장, 대기실에서 현을 갈고 나와 다시 연주했고 장한나는 아예 무대 위에서 현을 갈았다. “어제도 똑같이 A현이 끊어졌는데, 이 현 브랜드가 뭔지 아세요? ‘퍼머넌트(permanentㆍ영구적인)’예요, 퍼머넌트!”라고 여유까지 부리면서.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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